
전남과 광주 시민들이 오랫동안 수집하고 간직해 온 책들을 지역의 공공 문화자산으로 연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15일 전일빌딩245 9층 다목적강당에서 열린 ‘전남광주 북(BOOK)박물관 추진 방안 세미나’는 단순한 행사 하나를 넘어, 지역의 책과 기억, 삶의 흔적을 어떻게 다음 세대의 문화유산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묻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됐다.
이번 세미나는 전남광주 북(Book)박물관 추진 시민모임과 조선대학교 HK+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 지역문화연구소가 공동 주최·주관하고, 국회의원 안도걸 의원실과 한국연구재단, 광주관광공사가 후원한 자리다. 이날 현장에는 시민과 지자체, 문화 관련 단체 관계자 등 200여 명이 함께하며 북박물관에 대한 지역사회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세미나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전남과 광주에는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책과 도서문화자원이 적지 않지만, 이들 자료는 지금까지 개인의 공간에 흩어져 있어 체계적인 보존과 활용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산들을 ‘북(BOOK)박물관’이라는 새로운 개념 아래 공유 자원화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잠들어 있던 책이 지역의 지식 자산이 되고, 개인의 기억이 공동체의 문화가 되며, 도시의 인문적 품격 또한 한층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세미나에서는 북박물관을 단지 책만 전시하는 공간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자료집에는 장기적으로 책과 함께 라디오, TV, 카메라, 비디오테이프 등 생활문화자료를 결합한 복합형 아카이브 모델 가능성도 제시됐다. 이는 북박물관이 과거를 보관하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사와 미디어 변천, 시민의 취향과 시대정신까지 함께 읽어내는 입체적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행사는 개회와 축사, 경과보고에 이어 1부 기조발제와 토론, 2부 종합담론으로 진행됐다. 1부에서는 장우권 전남대학교 교수가 ‘왜 북 박물관인가?’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맡아 북박물관 설립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짚었다. 이어 김종구 조선대학교 도서관장, 이여진 광주동구문화관광재단 이사, 김규랑 상무소각장 문화재생사업 총괄기획자, 박지헌 ㈜문화토리 대표가 토론자로 참여해 북박물관 설립의 당위성과 추진 전략,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북 공간, AI 시대 아카이브의 역할 등을 다각도로 논의했다.
이 토론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책을 단순한 독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은 한 사람의 사고와 취향, 시간의 축적이 담긴 기록물이며, 동시에 한 지역의 인문생태를 보여주는 문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북박물관은 오래된 책을 모아놓는 장소가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삶을 지역 공동체의 기억으로 전환하는 공공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지역이 가진 문화 자산은 반드시 거대한 건축물이나 유명 예술품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서가, 한 집안의 책장, 한 세대가 읽어온 흔적 속에 도시의 진짜 정체성이 담겨 있을 수 있다.
2부 종합담론은 보다 인간적인 결을 더했다. ‘책과 더불어 삶의 여정’을 주제로 김대현 전남대 명예교수, 김용철 동명새마을금고 이사장, 조대영 동구인문학당 감독, 주광 한국방송DJ협회 기획이사 등이 참여해 각자의 장서와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일반 시민 자유발언도 이어지며 북박물관이 전문가만의 담론이 아니라 시민이 함께 만드는 참여형 문화사업이어야 한다는 공감이 확산됐다. 책을 많이 가진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라, 책을 통해 삶을 나누고 기억을 보존하며 세대 간 연결을 만드는 열린 공공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이 분명해진 것이다.
세미나와 함께 진행된 ‘전남광주 장서가 소장 도서 기획전’도 상징성이 컸다. 행사장 앞 라운지에 마련된 특별전에는 지역 장서가들이 소장한 도서 약 100여 권이 소개됐다. 이는 북박물관 구상이 아직 개념적 제안에 그치지 않고 이미 현실의 자산과 구체적 사람들, 실제 컬렉션 위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민의 책이 곧 박물관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셈이다.
이번 세미나는 지역문화정책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고 본다. 오늘날 도시 경쟁력은 단순한 개발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지역 고유의 기억을 얼마나 잘 보존하고, 시민의 삶을 얼마나 문화로 전환하며, 과거의 자산을 얼마나 미래 세대와 연결하느냐가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
북박물관은 바로 그런 점에서 전남·광주형 인문도시 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책을 중심으로 사람과 공간, 기록과 산업, 교육과 관광까지 연결할 수 있다면 이는 지역문화 활성화를 넘어 새로운 도시브랜드 자산으로도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무엇보다 북(BOOK)박물관은 ‘시민의 손에 있던 지식’을 ‘지역이 함께 누리는 문화’로 바꾸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다. 과거를 모으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흩어진 장서를 발굴하고,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하고, 교육과 관광 콘텐츠로 확장해 나간다면 전남광주는 책의 도시, 기억의 도시, 인문의 도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세미나는 그 가능성을 향한 첫 문장을 써내려간 자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