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시 말아 올린 손, 79회 조리기능장 박미숙 기능장의 기적 같은 여정

늦깎이 도전에서 박사 수료까지, 배움을 멈추지 않은 삶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난 의지, 기능장 합격으로 이어지다

명문 교육의 힘, 양산마스터요리학원과 박선화 원장의 헌신

사진 미식 1947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착합니다.”

 

79회 조리기능장에 합격한 박미숙 기능장의 말에는 단순한 다짐을 넘어, 실제로 삶을 증명해낸 무게가 담겨 있다.

 

2002년 3월, 김밥전문점 ‘소풍’을 창업하며 시작된 그의 요리 인생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2026년 현재까지 성업 중인 이 공간은 단순한 가게가 아닌, 그의 삶이자 꿈의 출발점이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늦은 나이에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2017년 부산여자대학교 입학,
2021년 경성대학교 외식경영학부 졸업,
2023년 영산대학교 대학원 조리예술학과 석사 졸업,
2026년 박사 과정 수료.

 

현장과 학문을 동시에 이어온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그러던 중,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고가 찾아왔다. 2024년 12월 5일 새벽, 가게로 향하던 길.
건널목에서 트럭과 충돌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나는 바닥에 죽어 있었다.” 119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지만,
뇌출혈로 인한 신경 손상과 머리 봉합, 오른쪽 다리 골절까지 겹쳐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두 달간의 입원과 1년 반이 넘는 치료. 누구라도 꿈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미숙 기능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약을 챙겨 들고 다시 실습실로 향했다.


그의 의지는 몸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양산마스터요리제과제빵학원과 박선화 원장이다.

 

양산마스터요리제과제빵학원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수많은 기능장을 배출해낸 ‘기능장 양성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특히 박선화 원장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제자의 가능성을 끝까지 끌어올리는 

진정한 스승으로 평가받는다.

 

몸조차 제대로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박미숙 기능장이 다시 실습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선화 원장의 끊임없는 격려와 지도, 그리고 믿음이 있었다.

 

“될 때까지 한다”는 교육 철학은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2026년 3월 14일, 조리기능장 시험. 그리고 2026년 4월 10일, 마침내 합격 통지.

 

그 순간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한 스승의 헌신, 그리고 한 교육기관의 저력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박미숙 기능장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다문화 가족을 위한 김밥 말기 체험 봉사를 이어가며
요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있다.

 

김밥 한 줄에는 그의 삶, 그의 고통, 그의 극복, 그리고 그의 나눔이 담겨 있다.

늦은 시작도, 큰 시련도 진짜 꿈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좋은 스승과 올바른 교육이 함께할 때 그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

박미숙 기능장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증명이다.
 

 

 

 

 

작성 2026.04.14 00:09 수정 2026.04.1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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