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타 폐지, 혁신을 위한 도전인가?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개발 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사전 검증하던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폐지 이후, 새로운 심사 체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4월 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물리 및 바이오 분야 학회들과 함께 구축형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전주기 심사제도' 운영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번 논의는 R&D 예타 폐지라는 정책 변화에 대응하여 연구 현장의 의견을 정책 기획으로 연계하는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국내 연구 생태계에서 중요한 정책적 변화로, 기존의 복잡한 예산 배정 체계를 단순화하고 연구 자율성을 증대시키는 동시에 전략적 R&D 투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설명회에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적용 중인 '스노매스(Snowmass)'와 '크리티컬 디시전(Critical Decision)' 모델의 사례를 소개하며, 이를 한국 연구 환경에 맞게 응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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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해외 모델들은 연구자 주도의 자율성과 단계별 체계적 관리를 결합한 선진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D 예타 폐지와 새로운 심사 체제의 필요성 R&D 예타는 대규모 연구 과제의 경제적·사회적 타당성을 사전에 검토함으로써 정부 예산이 적재적소에 효율적으로 투입되도록 관리하는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특히 수백억 원 이상의 대형 구축형 R&D 사업의 경우, 예타를 통해 사업의 필요성, 효과성, 실현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왔습니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이러한 사전 평가 과정이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 단기적 경제성 평가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급변하는 과학기술 환경에서 장기간 소요되는 예타 절차가 적기 투자를 방해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주기 심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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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기 심사제도는 연구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설계, 구축, 운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사전에 규격화하지 않고 단계별로 유연하게 점검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접근 방식입니다. 이는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 과도한 제약을 가하는 대신, 각 단계마다 적절한 검증을 통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스노매스와 크리티컬 디시전: 해외 선진 모델의 시사점 과기정통부가 이번 설명회에서 소개한 '스노매스'는 미국 고에너지물리학회를 중심으로 연구자들이 약 10년에 한 번씩 모여 '과학적으로 중요한 우선순위 도전과제'를 선정하는 민간 주도 협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자발적으로 특정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협력하며, 향후 10년간 추진해야 할 핵심 연구 주제와 우선순위를 도출합니다.
스노매스의 핵심은 연구자 커뮤니티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체계적인 합의 과정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연구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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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컬 디시전'은 사업 기획부터 설계, 구축의 전 과정에서 기술적, 재정적 리스크를 줄여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단계적 평가 관리 방안입니다. 이 시스템은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여러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명확한 기술적 목표와 예산 계획을 설정한 후, 이를 달성했을 때만 다음 단계로 진행하도록 하는 체계입니다.
이를 통해 초기 단계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나 예산 초과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R&D 현장에서 연구자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정부가 보다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R&D 프로젝트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둡니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연구자 커뮤니티의 성숙도, 투명한 의사소통 체계, 그리고 장기적으로 일관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전주기 심사제도, 연구 현장의 기대와 역할
전주기 심사제도의 핵심: 연구 현장 중심의 새로운 모델 과기정통부가 이번 논의에서 제시한 새로운 모델의 핵심은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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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는 학회 등 연구자 커뮤니티가 '과학·기술적 필요성'에 기반한 수요를 제시하면, 부처가 이를 선별하여 R&D 사업으로 기획·추진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기존의 하향식(top-down) 방식에서 벗어나 상향식(bottom-up) 접근을 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과학기술적 필요성과 도전과제를 직접 제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R&D 정책이 수립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연구의 창의성과 도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연구자들의 책임감과 참여도를 제고하는 효과가 기대됩니다.
다만 이러한 모델이 한국 연구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연구자 커뮤니티가 자율적이고 투명하게 우선순위를 도출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둘째, 정부는 연구 현장의 제안을 존중하되,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셋째, 단계별 평가와 점검 과정이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도구로 작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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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패러다임 전환 이번 R&D 예타 폐지 후속 논의는 단순히 하나의 정부 정책 변화가 아닌, 한국 과학기술 연구 생태계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과거 한국 과학기술은 주로 선진국을 추격하는 형태의 연구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이러한 추격형 연구 모델에서는 명확한 목표와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중요했고, 예타와 같은 사전 평가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양자 컴퓨팅, 나노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무대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선도형 연구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적인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연구는 단기적 성과나 경제성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핵심 성공 요인이 됩니다. 전주기 심사제도는 이러한 선도형 연구 환경에 보다 적합한 유연한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과도한 제약을 가하는 대신, 연구가 진행되면서 단계별로 성과를 검증하고 필요에 따라 방향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연구의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접근입니다. 또한 이번 논의는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R&D 정책 수립에 더욱 중요하게 반영될 것임을 시사합니다.
물리학회와 바이오 분야 학회들이 직접 참여한 이번 논의는 그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과학기술적 필요성에 기반한 연구 수요를 제시하고, 이것이 국가 R&D 정책으로 구체화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성공적 안착을 위한 과제들
한국 과학기술 생태계의 변화를 바라보며
전주기 심사제도가 한국 연구 생태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선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가 중요합니다.
스노매스와 크리티컬 디시전 모델을 한국 상황에 맞게 어떻게 변형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연구 문화, 행정 체계, 예산 규모와 배분 방식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해외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연구자 커뮤니티의 역량 강화도 필수적입니다. 자율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통해 과학기술적 우선순위를 도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회와 연구자 조직의 거버넌스 개선, 투명한 의사소통 체계 구축,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이러한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합니다. 예산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주기 심사제도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정부의 일관되고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경제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R&D 예산이 급격히 변동한다면, 장기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됩니다.
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 확보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입니다. 단계별 평가가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프로젝트의 기술적·재정적 리스크를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도구로 작동하려면, 평가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평가 기준과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연구자들이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간 부문과의 협력도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가 주도의 연구만으로는 급변하는 과학기술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민간 기업, 벤처 캐피털, 대학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R&D 생태계를 구축하고, 전주기 심사제도가 이러한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을 촉진하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 불확실성과 기회가 공존하는 전환기에는 반드시 시행착오가 따릅니다.
R&D 예타 폐지 이후 새로운 심사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논의가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더 이상 기존의 경직된 규제와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R&D 관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입니다.
2026년 4월 9일에 진행된 이번 논의는 그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회와 바이오 분야 학회의 참여는 앞으로 더 많은 학문 분야와 연구자 커뮤니티가 이 과정에 동참할 것임을 예고합니다.
연구자, 정부, 학회, 민간 부문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협력한다면, 한국은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빛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는 항상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가 중요합니다.
전주기 심사제도가 한국 과학기술 연구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앞으로의 실행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논의가 단순한 정책 토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연구 환경 혁신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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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