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기반 시스템의 후퇴가 가져올 치명적 결과
2026년 4월 7일, 세계 보건 기구(WHO)는 '세계 보건의 날'을 맞아 발표한 특별 보고서 'Risky Business'에서 전 세계적으로 과학 기반 시스템과 글로벌 보건 안보에 대한 약속이 "놀라운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과학과 증거를 기반으로 한 접근 방식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현재 진행 중인 위험한 후퇴 현상에 대해 국제 사회의 즉각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과학 기반 증거가 사회 의사 결정의 중심이 되었던 역사는 짧지만, 그 중요성은 점점 더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글로벌 위기는 과학적 연구와 증거 기반 접근 방식의 필수적인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시켰습니다.
그러나 WHO의 보고서는 현재 과학 연구와 보건 정책에 대한 전 세계적인 투자 감소가 팬데믹을 통해 얻은 중대한 교훈마저 잊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단순한 예산 조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생물학적 위협에 대한 방어 역량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위험천만한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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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mRNA 백신 연구 개발을 위한 연방 계약을 5억 달러 이상 취소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등 신종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백신 기술 개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mRNA 기술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향후 다양한 감염병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5억 달러 이상의 계약 취소는 이러한 혁신적 기술의 발전을 중단시키고, 미래의 팬데믹에 대한 대비 능력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미국 내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보건 안보 체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합니다. 특히 2025년에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재정 지원 중 약 86%가 중단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금 공급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USAID는 개발도상국의 감염병 감시 체계, 백신 접종 프로그램, 보건 인프라 구축 등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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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원의 86%가 중단되면서 가장 취약한 지역의 보건 시스템이 붕괴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미국의 해외 원조 삭감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다른 주요 공여국들의 정책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 독일, 캐나다 등 전통적으로 글로벌 보건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온 국가들도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정책 후퇴가 단순히 한 국가의 결정에 그치지 않고, 국제 사회 전체의 보건 안보 투자 축소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자간 협력의 약화는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으며, 국경을 초월하는 감염병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WHO는 현재의 자금 추세가 지속될 경우 그 결과가 재앙적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보고서는 2030년까지 약 940만 명 이상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라, 적절한 투자와 과학 기반 접근이 이루어졌다면 예방 가능했을 생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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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만 명이라는 숫자는 중간 규모 국가의 전체 인구에 해당하며, 이들 대부분은 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취약 계층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보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글로벌 건강 격차를 확대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보고서는 또한 감염병 위협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간 발견된 신종 감염병의 거의 60%와 새로운 인간 병원균의 75%가 동물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인간-동물-환경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균형과 관련된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이러한 위협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시급한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기후 변화로 인한 동물 매개 질병 발생 위험이 특히 증가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온난화로 인해 모기와 같은 병원체 매개체의 서식 범위가 확대되고,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 빈도가 늘어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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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보건 시스템에 대한 투자 감소는 이미 취약한 지역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질병 감시 체계만으로는 이러한 복합적이고 동적인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역할: 국제 보건 공조와 연구 투자 확대
이에 WHO는 '하나의 건강(One Health)' 접근 방식을 우선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습니다. 'One Health'는 인간, 동물, 환경의 건강을 통합적으로 다루는 다학제적 접근 방식으로, 감염병의 근본 원인을 이해하고 예방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이 접근법은 의학, 수의학, 환경과학,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복잡한 보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가 어떻게 인수공통감염병의 출현을 촉진하는지, 가축 사육 방식이 어떻게 항생제 내성 문제와 연결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One Health' 접근 방식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충분한 자금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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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은 투자 감소 추세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을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학제적 연구와 국제 협력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재정 약속과 정책적 일관성이 필요한데, 주요 공여국들의 예산 삭감은 이러한 노력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삭감을 단순히 경제적 조정의 일환으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재정 건전성 확보나 국내 우선순위 조정 등의 명분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각이 단기적인 이익만을 중시하는 위험한 관점이라고 비판합니다. 감염병 연구와 보건 안보에 대한 투자는 보험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 가치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투자 대비 수십 배, 수백 배의 가치를 창출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경제적 손실은 수조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사전 예방과 대비에 투자되었어야 할 비용의 수백 배에 해당합니다.
감염병 연구의 지속성은 단순히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공조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국경을 인식하지 못하며, 한 지역에서 발생한 감염병은 빠르게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취약한 지역의 보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안보를 높이는 일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넘어서 각국의 자기 이익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또한 민간 기업 대비 공공 자금 투자가 보건 연구에서 가지는 역할은 대체 불가능합니다. 민간 기업은 수익성을 중심으로 연구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시장성이 낮은 희귀 질환이나 개발도상국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감염병에 대한 연구는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반면 공공 자금은 보다 장기적이고 위험성이 큰 연구 영역에 초점을 둘 수 있으며, 공공재적 성격의 연구 성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mRNA 백신 기술도 수십 년간의 공공 자금 지원 기초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입니다. 공공 투자의 감소는 이러한 혁신의 씨앗을 말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진단 기술, 방역 체계, K-방역 모델 등을 통해 국제적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보건 안보 분야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견국으로서 다자간 협력을 중재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UN 및 WHO에서 한국의 기여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보건 분야 국제 협력에서도 점차 그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한국은 국내 보건 연구 및 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아시아 지역에서의 긴밀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은 인수공통감염병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이 지역과의 협력 강화는 한국의 보건 안보에도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미래를 위한 '하나의 건강' 접근
한국이 감염병 연구와 보건 안보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첫째, 국내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특히 기초 과학 연구와 장기 과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One Health' 접근 방식을 국가 보건 정책에 통합하고, 관련 부처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국제 협력을 통해 감염병 감시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지역 차원의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넷째,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술 이전과 역량 강화 지원을 확대하여 글로벌 보건 형평성에 기여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병의 위협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글로벌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병원체의 이동 속도와 범위는 계속 확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사회의 대응이 지연되면 될수록 인류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WHO의 'Risky Business' 보고서가 강조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과학 기반 시스템의 해체는 미래 세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물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국제적 교훈을 바탕으로 국내 정책과 국제 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연구·개발(R&D) 투자 방식에서 벗어나, 'One Health' 접근 방식처럼 인간, 동물, 환경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단순히 의료 시스템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 보전, 기후 변화 대응, 지속 가능한 농업 등 다양한 분야를 연계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기적인 정부 지원과 정책적 일관성은 감염병 연구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과학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우며, 특히 기초 연구는 수십 년의 축적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권 교체나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연구 지원이 불안정해지면, 장기 과제를 수행하기 어렵고 우수한 연구 인력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감염병 연구와 보건 안보에 대한 투자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앞에는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놓여 있습니다.
WHO의 경고는 단순한 우려 표명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명확한 예측입니다. 940만 명의 추가 사망자라는 숫자는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피할 수도 있는 미래입니다. 과학 기반 접근 방식은 단순히 보건 분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입니다.
전 세계가 'Risky Business'라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지금, 과학과 증거를 다시 의사 결정의 중심에 놓아야 할 때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과연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하게 될지 상상해 보셨나요? 주요 선진국들이 보건 안보 투자를 축소하는 이 시점에,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증거 기반 의사 결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와 국제기구에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보건 안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며, 이에 대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장 현명한 투자입니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값비싼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제 그 교훈을 행동으로 옮길 때입니다.
최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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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