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시 프리뷰] 흙 속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전이, 김희경 작가展… 수막새 호랑이로 전하는 회복의 감각

"서로에게 더 보드랍기를"… '우에다 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지는 '흙속'의 연대

시대의 염원을 간직한 '수막새호랑이', 깊은 침묵을 깨고 숨 쉬다

해체된 자아를 기꺼이 품고 재조립하는 시공간, 안전한 은신처


가장 깊은 정지, 생명 에너지의 응축
끊임없이 내달려야만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는 시대다. 우리는 종종 외부로 향하던 감각의 촉수를 거두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간을 갈망한다. 오는 5월 13일부터 일본 우에다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희경 작가의 개인전 ‘가장 깊은 정지 상태’는 바로 이 수축과 침묵의 시간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정지란 멈춤이나 기능의 소멸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한 제한과 해체의 과정을 거쳐 고요히 자신을 축적하는 시간, 즉 존재의 에너지가 가장 밀도 높게 응축되는 생명 전환의 국면이다.

 

일본 우에다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김희경 작가의 개인전 ‘가장 깊은 정지 상태’ 포스터 = 작가 제공

 

안전한 은신처, '흙 속'에서의 해체와 재조립
이러한 작가의 세계관은 캔버스 위 아크릴 물감과 한국 전통의 분채가 켜켜이 쌓여 직조해 낸 ‘흙 속’이라는 공간에서 만개한다. 흙은 생명이 스러지는 종착지인 동시에 새로운 싹을 틔울 채비를 마치는 기원의 장소다.

 

자아가 부서지고 해체되더라도 끝내 다시 온전하게 조립될 수 있는,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원시적 안식처인 셈이다. 작가는 “삶은 반드시 자기를 제한하고 휴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정지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은 가장 생의 감각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수막새호랑이, 시대를 뚫고 팽창하는 생명력
그의 평면 위에는 깊은 땅속에서 호흡하며 다시 떠오를 날을 기다려온 존재들이 다채로운 모티브로 등장한다. 미술사학자 강우방의 조형 이론에 깊은 영감을 받은 작가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생명력이 팽창하고 발산되는 역동적인 율동감을 화면에 이식했다.

 

고려시대 건축 부재인 ‘짐승 무늬 수막새(용안와)’에 새겨진 호랑이의 얼굴, 무덤이라는 생사의 경계에서 에너지를 전이시키는 신라시대 국보 ‘기마인물형토기’가 대표적이다. 이 유물들은 태고의 염원을 품고 흙 속에서 수백 년을 견딘 끝에 마침내 현대로 밀려 올라온 에너지의 결정체다.

 

지하화와 고사리, 보이지 않는 층위의 완벽한 생성
여기에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꽃과 열매를 맺는 지하화 ‘코멜리나 벵갈렌시스’와 태고의 에너지를 품고 뻗어 나오는 고사리 역시 존재의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한 은유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흙속1’, ‘흙속3’ 등의 대표작을 통해 관람객은 시공간을 초월해 응축된 치유와 재생성의 힘을 직관적으로 목도하게 된다.
 

김희경_흙속1_2026_Acrylic & Vegetable dyes on canvas_72.7x60.6cm = 작가 제공

 

김희경_흙속3_2026_Acrylic & Vegetable dyes on canvas_53x45.5cm = 작가 제공

 

우에다 시립미술관, 연대와 보드라움을 향한 교감
한국적인 유물과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일본의 미술관에 걸린다는 점도 이번 전시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다. 국경을 넘어 인류가 공유하는 집단 무의식의 교집합을 짚어낸 작가의 시선은 깊고 따뜻하다.

 

작가는 “각 나라마다 땅속에 오래 머물던 유물들이 있고, 아픔과 염원이 묻혔다 떠올랐을 것”이라며 “흙이 오래 품어준 역사인 만큼 서로에게 더 보드랍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예술이라는 매개로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는 단단한 연대의 메시지다.

 

결핍의 시대를 껴안는 다정한 온기, '흙 속 작가'가 빚어낸 은신처
이러한 작품 철학의 이면에는 인간 내면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가 자리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 석사를 졸업한 그는 저서 『마음 숲 물 한 모금』과 『엄마가 괴물로 변하지 않는 비밀』을 통해 타인의 상처를 보듬고 심리적 회복을 돕는 치유자의 길을 걸어왔다.

 

상처 입은 마음이 스스로를 묻고 다시 온전한 싹을 틔울 수 있는 안전한 은신처, 예술이 건네는 그 다정한 회복의 힘이 작가의 붓끝을 타고 흐른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를 직시하는 '흙 속 작가'의 깊은 사유가 담긴 이번 전시는, 상실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우물이 될 것이다.

 

‘흙 속’ 작가 김희경 = 작가 제공

 

[전시 정보]
▪️전시명: 가장 깊은 정지 상태
▪️기간: 2026년 5월 13일 – 5월 18일
▪️장소: 일본 우에다 시립미술관
▪️주최: 갤러리문
▪️후원: 아름다운 손길, 한국미술협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아티스트 소개: 김희경] 
한양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원에서 미술치료 석사를 졸업한 후 인간의 내면과 감정, 회복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회화 작가다. 저서 『마음 숲 물 한 모금』, 『엄마가 괴물로 변하지 않는 비밀』을 출간하며 대중에게 다정한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2025년 한국미술협회 우수 작가 유공표창을 수상했으며, 독일 베를린 아트페스티벌, 프랑스 아를 전시에 참여하는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흙 속 작가'로서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안전한 은신처를 평면에 구현하며 예술이 갖는 치유의 힘을 실천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 및 작업 과정은 공식 SNS(@heeppy_12345)를 통해 소통하고 있다.

 

 

 

작성 2026.04.06 22:51 수정 2026.04.0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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