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데살로니가전서 강해, 핍박 속 교회가 끝내 빛난 이유


장재형 목사의 데살로니가전서 묵상을 통해, 핍박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교회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재림 소망의 은혜를 깊이 읽습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오래 바라보면 한 가지 사실이 마음에 남습니다. 빛은 언제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더 또렷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처와 두려움, 배신과 혼란이 짙게 깔린 화면 한가운데 뜻밖의 빛줄기가 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부르심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바라본 데살로니가 교회는 결코 평안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환난이 있었고, 압력이 있었고, 조롱과 적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바로 그 교회를 향해 감사했고, 바로 그 공동체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장재형 목사(올리벳대학교 설립)의 설교가 이 본문을 특별히 깊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는 안전할 때보다 흔들릴 때 본질을 드러내며, 복음은 박수 속보다 핍박 속에서 더 선명하게 증언된다는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단순한 초대교회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핍박받는 교회가 어떻게 무너지지 않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복음의 문서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기억했습니다. 이 짧은 표현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는 가장 강한 문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믿음은 머리로만 동의하는 사상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역사였고, 사랑은 말로만 남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붙들고 자신을 내어주는 수고였으며, 소망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게 하는 인내였습니다. 원문이 해설하듯,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서는능력을 체험하는 믿음이며, 그 능력의 중심에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부활 능력이 놓여 있습니다

복음은 편안함이 아니라 능력으로 증명된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귀한 이유는 고난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 고난 한가운데서 무엇을 붙들었느냐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사람의 말로만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짧은 양육 기간에도 불구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지역 교회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압력과 유대인들의 거센 반대 속에서, 아직 어린 공동체가 보여 준 이 성숙은 인간적인 결심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부활 신앙의 능력이 실제로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장재형 목사가 이 대목을 힘주어 전하는 것도, 오늘 교회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강해지는가. 규모입니까, 제도입니까, 분위기입니까.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능력으로 받을 때 강해집니다

상처 속에서 더 또렷해지는 믿음의 역사

우리는 종종 고난이 오면 은혜가 멀어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는 오히려 반대의 역설을 보여 줍니다. 시대마다 박해의 양상은 달라지지만, 복음을 향한 적대는 끊이지 않았고, 그럼에도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 서 왔습니다. 그 힘은 사람의 재주나 제도의 견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부활 신앙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핍박받는 자들의 이야기에는 늘 은혜의 향기가 스며들고, 그들의 견고한 믿음은 다른 성도들에게 더 큰 헌신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대목은 오늘의 성경 묵상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교회를 지키는 것은 외적 안정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바로 그 믿음이 사랑의 수고를 낳고, 사랑의 수고가 다시 공동체를 세우며, 세워진 공동체가 복음의 향기를 세상에 흘려보내게 됩니다

재림 소망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거룩한 견인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의 중심은 결국 재림 신앙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원문은 복음의 완결이 단지 초림과 십자가와 부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 안에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균형입니다. 재림 소망은 공포를 자극하는 종말론이 아니라, 환난 속 교회를 붙드는 견인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불의와 죄를 영원히 방치하지 않으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끝내 붙드신다는 믿음이야말로 박해받는 성도에게 가장 깊은 위로가 됩니다. 초대교회가마라나타를 외쳤던 것도 절망을 확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궁극적 승리가 주님께 있음을 고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시에 바울의 가르침은 과열된 종말 열광과도 거리를 둡니다. 원문이 짚듯이, 데살로니가 교회가 열정적인 재림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바울이 이미 모든 종말이 완성되었다고 말한 것은 아닙니다. 시기를 계산하는 대신, 성도다운 삶을 지속하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교회가 붙들어야 할 신학적 통찰입니다. 재림은 날짜를 맞히는 지식이 아니라, 오늘을 거룩하게 살아 내게 하는 복음의 힘입니다. 그래서 진짜 재림 신앙은 현실을 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더 사랑하고 더 인내하며 더 충실하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끝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은혜와 중보다

원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항상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억한다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다고 강조합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교리를 아는 것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눈물의 기도와 중보의 사랑, 그리고 서로를 향한 기억 속에서 자랍니다. 핍박받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시련을 겪는 성도들을 위해 연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범은 오늘에도 재현됩니다. 장재형 목사의 설교가 결국 우리를 이 지점으로 이끄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가 말하는 교회는 강한 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복음을 능력으로 받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결국 데살로니가전서 1 2-10절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핍박 속의 교회가 보여 준 부활 신앙과 사랑, 그리고 종말 소망입니다. 편안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교회가 더 튼튼해지고 복음이 더 힘 있게 증언되는 이 역설은 초대교회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와 오늘의 성도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복음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읽는 성경 묵상은 단지 과거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다시 살아날 때, 교회는 다시 교회다워지고 복음은 다시 세상 한복판에서 빛을 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장재형 목사의 데살로니가전서 설교가 오늘도 깊은 은혜로 남는 이유입니다

 

www.davidjang.org




작성 2026.04.06 18:48 수정 2026.04.06 18:48

RSS피드 기사제공처 : 굿모닝매거진 / 등록기자: 최우석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