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 억울함이라는 흉기

증거 앞에서도 당당하게 부르짖는 '나'의 인권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궤변의 민낯

거울 속에 갇힌 자기 연민, 지워지는 타인의 존엄

사진=AI생성

차가운 철제 취조실 의자에 앉아, CCTV 영상을 응시하는 피의자의 눈빛을 본다. 불과 3시간 전, 한 사람을 무차별 폭행하고도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 대신 분노가 가득하다. 형사님이 명백한 증거를 들이밀자, 그는 핏대를 세우며 내뱉는다.

 

"오죽했으면 내가 그랬겠습니까? 형사님, 저도 인권이 있는 거 아닙니까?“

 

거울 속에 갇힌 추악한 연민

 

35년 현장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명백한 CCTV 증거 앞에서도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왜곡된 자기 연민의 거울 속에 갇혀, 자신은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며 먼저 원인을 제공한 상대방 탓이라고 핏대를 세운다. 그 거울에 비친 것은 폭력에 짓밟힌 타인의 존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얄팍한 사실뿐이다.

 

면죄부가 된 "그럴 만한 사정“

 

비단 강력 범죄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 속 무례함을 밥 먹듯 저지르는 이들, 조직 안에서 부하 직원의 영혼을 쥐고 흔드는 상사들 역시 이 '억울함'이라는 거울을 주머니에 품고 다닌다. 그들은 "조직을 위해", "가르치기 위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타인의 존엄을 짓밟으면서도, 정작 비판받을 때는 "나에 대한 침해"라며 방어막을 친다.

 

물론 모든 갈등에는 맥락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맥락이 가해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저 사람이 먼저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라는 주장은, 폭력을 정당방위로 치환하려는 비겁한 논리일 뿐이다.

 

제복을 샌드백으로 만든 궤변

 

현장에서 느낀 가장 뼈아픈 딜레마는, 가해자가 들이미는 이 '억울함'이라는 흉기가 정작 보호받아야 할 진짜 피해자의 권리를 짓누르는 순간이었다. 특히 공권력을 향해 인권침해라는 역고소를 무기로 쓸 때 그 궤변은 가장 강력해진다.

 

증거 앞에서 뻔뻔하게 인권을 부르짖는 자들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자들은 무력하게 샌드백이 된다. 조직은 문제를 피하려 침묵을 강요하고, 가해자는 그 침묵을 틈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는 궤변을 정당한 논리로 둔갑시킨다. 이때 인권은 약자를 위한 방패가 아니라, 선을 넘는 자들이 샌드백을 찌르기 위해 휘두르는 칼이 된다.

 

깨부숴야 할 거울, 회복해야 할 존엄

 

진짜 인권은 거울 속의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거울 너머에 있는 타인의 존엄을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 추악한 둔갑술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 

 

인권은 내 기분이 나쁠 때 휘두르는 권리가 아니다. 무례함에 맞서 나의 존엄을 지키는 생존법인 동시에, 내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상처에 무거운 책임을 지는 원칙이어야 한다. 취조실의 그 왜곡된 거울을 깨부술 때, 비로소 진짜 인권의 근육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칼럼니스트 소개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그대는 늘 선물입니다'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작성 2026.04.06 16:36 수정 2026.04.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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