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언론, '하아레츠'는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와 그 중심에 선 튀르키예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 이후 걸프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줄이고 독자적인 지역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 특히 튀르키예는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 등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며 새로운 보안 체계의 핵심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튀르키예의 방위 산업 경쟁력이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가속화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이 지역 연대에서 고립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요약하면, 외부 세력의 개입 대신 지역 국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중동 질서 내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중동의 거대한 안보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중동의 하늘을 지배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타는 듯한 태양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조기가 그려진 미국의 안보 우산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중동의 풍경은 사뭇 다르다. 폭격의 굉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불신과 처절한 생존의 질문이 싹트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까지 저 멀리 워싱턴의 선의에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이제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중동 각국의 안방과 궁전, 그리고 시장 바닥을 흐르는 가장 뜨겁고도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찢어진 안보 우산과 '유일한 구원자'의 퇴장
수십 년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에게 미국은 대체 불가능한 '안보 보증인'이었다. 미국산 전투기가 하늘을 날고 미군 기지가 요새처럼 버티고 있는 한, 그들은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례없는 갈등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전략적 모호함은, 이 오랜 믿음에 치명적인 균열을 냈다.
걸프 국가들은 이번 전쟁을 지켜보며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 미국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혹은 백악관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안보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는 공포였다. 이제 그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되, 미국을 '유일한 구원자'가 아닌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하이파 대학교의 엘라드 길라디 연구원이 분석했듯,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수치 조절이 아니다. 중동 국가들이 외부 세력에 의존하던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 스스로 질서를 구축하려는 '내생적 질서'의 태동인 것이다.
앙카라에서 부는 바람: 튀르키예라는 새로운 대안
미국이 전략적 우선순위를 아시아로 옮기며 비워둔 그 광활한 공간을 가장 빠르게 파고든 것은 다름 아닌 튀르키예였다. 한때 사우디나 이집트와는 '앙숙'에 가까웠던 앙카라의 행보는 경이롭다. 튀르키예는 실용주의라는 깃발 아래 과거의 적들과 손을 잡으며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시켰다.
특히, 지난 3월 19일에 열린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파키스탄의 4자 외무장관 회담은 세계 외교사에 기록될 만한 상징적 사건이다. 여기서 주목할 인물은 파키스탄이다. 이슬람 세계의 유일한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이 이 행렬에 동참했다는 것은, 새로운 안보 축이 중동을 넘어 이슬람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튀르키예는 이제 단순히 무기를 파는 나라가 아니라, 중동의 새로운 안보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건축가'로 급부상했다.
'정치적 족쇄' 없는 무기, 방산 기술의 대전환
걸프 국가들이 튀르키예에 열광하는 이유는 감상적인 연대감 때문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실리 때문이다. 그동안 중동을 독점해 온 미국산 무기는 강력하지만, 그만큼 까다로웠다. 인권 문제, 민주주의 지수, 혹은 미국의 중동 정책 방향에 따라 부품 공급이 끊기거나 소프트웨어 승인이 거부되는 '정치적 족쇄'가 항상 뒤따랐다.
반면, 시리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실전 성능을 입증한 튀르키예의 첨단 드론과 미사일 체계는 자유롭다. 튀르키예는 무기를 팔면서 내정 간섭을 하거나 도덕적 훈계를 늘어놓지 않는다. 이 '전략적 자율성'이야말로 자존심 강한 중동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였다. 이제 그들은 튀르키예산 무기를 손에 쥐고, 워싱턴을 향해 더 크고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 운명은 우리 손으로"
이 거대한 지각변동의 배후에는 튀르키예 외무장관 '하칸 피단'의 날카로운 통찰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정보기관장 출신다운 냉철함으로 "지역의 문제는 외부 세력이 아닌 지역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그의 주장은 명료하다. 우리가 스스로 지킬 힘이 없을 때, 외부 세력은 언제나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들의 이익을 강요해 왔다는 것이다. 이 '하칸 피단 원칙'은 이제 리야드와 카이로에서도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십 년간 외부 세력의 개입이 가져온 결과가 결국 불안정과 분열이었다는 역사적 학습 효과가 튀르키예식 '자주 안보 모델'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준 셈이다.
외톨이가 된 이스라엘, 새로운 방정식의 그림자
역설적으로, 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가장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것은 이스라엘이다. 걸프 국가들은 이란이라는 공동의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과 대놓고 손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스라엘과의 결탁이 오히려 이란을 자극하고 지역 내 반미·반이스라엘 여론에 불을 지피는 '전략적 부채'가 된다고 판단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권 안보 연대가 강해질수록, 이스라엘은 이란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도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모래 위에 세우지 않는 평화를 꿈꾸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평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선물인가, 아니면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결실인가. 오랜 시간 중동에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거대한 정치적 흐름 이면에서 떨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망울을 본다.
그동안 중동의 평화는 너무나 자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라는 모래 위에 세워져 왔다. 바람이 불면 무너지고, 주인이 바뀌면 사라지는 그런 가짜 평화였다. 이제 중동 국가들이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겠다"라고 일어서는 이 장면은, 어쩌면 긴 방황 끝에 집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뒷모습과도 닮았다.
비록 지금은 무기 체계를 다각화하고 안보 연대를 강화하는 군사적 움직임으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우리도 스스로 존엄을 지키고 싶다'라는 인간 본연의 외침이 서려 있다.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억제력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동의 생존을 위해 손을 잡는 '내면의 성숙'에서 시작된다.
강대국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앙카라와 리야드, 카이로의 지도자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진정한 화해의 서사가 담기기를 기도한다. 더 이상 아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걱정하지 않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내일의 꿈을 꿀 수 있는 땅. 그 길은 멀고 험하겠지만,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이들의 자립을 향한 여정에 깊은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