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팝나무의 새순이 꽃망울처럼 부풀었습니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팝나무의 봄 앞에 섰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Y가 일이 고되거나 동료 사이가 안 좋아 퇴직하는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아내가 타지에 가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해서요.”
그래서 아내는 한 달 전 먼저 퇴직을 했고, 이제 자기 차례가 왔다고도 했습니다.
봄은 싱그럽고 또 대견합니다.
새순을 돋우는 조팝나무도, 새 삶을 찾아 멀리 떠나려는 Y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도 덩달아 가벼워집니다.
나는 아이처럼 유치하게 물었습니다.
“모아 놓은 돈이 좀 있나 봐요?”
저는 Y의 슬픈 월급을 훤히 압니다. 그리고 이야기 중에 아내의 벌이도 짐작할 수 있었고요.
“아마 두어 달쯤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Y는 더 이상 내가 걱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제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저 자신임이 분명해졌습니다.
Y 부부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그들에게는 톨스토이의 소설도, 니체의 철학도 소용없습니다.
삶에 끌려다니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려는 그들이야말로 삶의 주인이고 자유인이니까요.
작지만 밝은 모습의 L은 미화원 반장입니다.
며칠 전 L은 예의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퇴직을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 주까지만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아니, 왜요?”
“거리는 더 멀지만, 월급 더 주는 학교 급식소로 가려고요.”
저는 급식소는 몸이 상당히 힘들고, 출퇴근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여기랑 큰 차이도 없을 거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L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쓸데가 더 많아서요.”
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L이 말하는 ‘(돈을) 쓸데’라는 말이 슬프게 들렸기 때문입니다.
‘쓸데’를 쫓으면 팔아야 하는 노동의 양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쓸데’를 조율하지 않으면 자기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시간을 놓칠 수 있습니다.
Y와 L의 처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Y보다 많이 소유하고 많이 버는 사람도 Y처럼 삶을 맘껏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L보다 많이 소유하고 많이 버는 사람 중에 ‘쓸데’에서 자유로워지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삶 앞에서는 학식이나 지위, 소유 따위는 아무 소용없음을 깨닫습니다.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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