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3문
Q. Which is the first commandment? A. The fifth commandment is, Honor thy father and thy mother: that thy days may be long upon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문. 제5계명은 무엇입니까? 답. 제5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ㆍ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권위가 몰락하고 있는 시대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파고는 모든 수직적 질서를 해체하고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관계의 비계층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관계의 결핍과 무질서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63문이 제시하는 제5계명은 단순히 유교적 효도나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 고리타분한 시대착오적 도덕률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어떻게 타자와 연결되어야 하며, 그 질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통찰하는 인문학적 기초석이다.
성경이 말하는 '공경'의 히브리어 '카베드(כָּבֵד)'는 본래 '무겁다'는 뜻을 지닌다. 즉, 누군가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심리적 태도를 의미한다. 비즈니스 리더십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상사나 동료, 혹은 파트너의 전문성과 인격을 존중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과 연결지을 수 있다. 부모라는 최초의 타자와 맺는 관계에서 '무거움'의 예의를 배우지 못한 인간은 사회라는 더 큰 바다로 나갔을 때 타인의 권리와 경계를 존중하는 법을 상실하기 쉽다.
제5계명은 십계명의 두 돌판 중 인간에 대한 의무를 다루는 두 번째 돌판의 첫머리에 위치한다. 이는 인간관계의 모든 질서가 가정 내의 존중으로부터 발원함을 시사한다. 부모는 아이가 세상과 맺는 최초의 거울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훈련은 곧 나보다 앞선 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수용하는 개방성을 키우는 과정이며,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코칭 리더십'과 '역멘토링'의 토대가 된다. 윗세대를 존중하지 않는 조직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며, 아랫세대를 귀히 여기지 않는 사회는 미래의 동력을 잃는다.

이 계명에는 독특하게도 '약속'이 붙어 있다. "네 생명이 길리라"는 선언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수명의 연장만을 뜻하지 않는다. 여기서 '길다'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라크(אָרַךְ)'는 지속성뿐만 아니라 질적인 풍성함을 포함한다. 상호 존중의 질서가 확립된 사회는 불필요한 갈등 비용(Transaction Cost)을 최소화한다. 서로를 무겁게 여기는 공동체는 신뢰 자본이 높기에 더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번영을 누린다. 즉, 공경의 질서가 살아있는 땅에서 공동체의 안녕은 더 견고해지고 개인의 삶은 더 평온하게 지속된다는 원리다.
오늘날 우리는 '부모'라는 상징을 넘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권위와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굴종이 아니라, 각자에게 부여된 위치와 역할에 따른 마땅한 존의(尊意)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자녀는 부모를, 학생은 스승을, 시민은 법과 질서를 무겁게 여길 때 비로소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 상생의 길로 접어든다. 웨스트민스터의 선조들이 이 계명을 인간 의무의 첫 번째로 둔 이유는 분명하다. 존중이 사라진 곳에 인간다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소요리문답 제5계명은 우리에게 '낮아짐의 미학'을 가르친다. 누군가를 공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낮추고 상대의 권위를 인정하는 공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이 비어있는 공간이야말로 신의 은총이 머물며,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는 축복의 통로가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땅에서 장수하며 번영하기를 원한다면, 다시금 내 곁에 있는 타자들을, 특히 나를 있게 한 존재들을 '무겁게' 대하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