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소녀의 용서

이태상

언젠가 여러 해 전에 미국의 월간 화보 라이프지가 펴낸 사진을 곁들인 포토에세이집 ‘삶의 의미에 대한 감상들’이 있었다. 이 책은 ‘삶의 의미’의 속편으로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라는 이 시대 아니 만고의 궁극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세계 도처에 사는 365명의 유명 또는 무명 인사로부터 구해 본 것이다. 

 

수록된 사진들은 세계의 일류급 사진작가들이 생생한 컬러 이미지로 삶의 정수를 포착한 것들인데 36개국과 달에서 찍은 경치가 마치 우주 무변의 무한한 공간과 영원무궁의 시간을 한순간 한 장면에다 응축 응결시켜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실린 글들은 53개국 사람들의 말이다. 그 가운데서 발췌한 일부가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실린 것 중 몇 사람의 글들을 여기에 요약해 옮겨 본다. 미국 작가 고어 바이달(1925-)의 말이다. 

 

“난 정말 삶의 의미를 알고 있지만 밝히지 않겠다. 즐겁게 살라는 것 말고는” 

 

“삶의 의미는 삶이 표현되는 모든 것에 담겨 있다. 우주 자연 모든 것에 나타나는 무한 무수한 형태와 현상 속에 있다. 삶은 아름다운 꽃들과 노래와 음악으로 피어나고 별들과 성운과 은하수로 폭발한다. 우린 살아있는 가슴 뛰는 춤추는 우주 속에 존재하고 특전이 부여된 종자이다. 모든 생명의 창조적인 힘이 우리의 혼속에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까. 우리 모두 누구나 그 어떤 목적을 갖고 이 지구 세상에 태어난다. 어떤 것이든 그 목적을 이루려면 우리 각자 속에 있는 신성의 도화선에 점화, 우리 삶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 가수 마이클 잭슨(1958-2009)의 말이다. 

 

“우린 세속적인 일들에 얽매여 우리가 영적인 추구를 위해 이 세상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구도의 노정이 인생의 가장 의미 있고 신나는 부분임을 알게 된 것이 내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미국의 인기 TV 토크쇼 흑인 여성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1954-)의 말이다. 다음은 오프라 윈프리가 소개한 자신의 이야기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일, 사건마다 우리가 두려움보다 사랑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내 인생에 있었던 좋은 일들은 다 내가 사랑을 선택한 데서 생긴 것들이다. 기쁨과 희망 그리고 우리 모두가 타고난 우리의 영적 갈망을 달래는 일 말이다. 그 반대로 두려움이란 우리 자신이 수준 미달로 사람 대접받을 만하지 못하다든지 하는 우리 자본주의사회가 말해주는 최면술에 걸려 욕구 충족 아니 만족과 행복이 물질적인 재화를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는 데서 온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각자 깊은 속에서는 그것이 아니고 그 이상의 것이 있어야 함을 인지한다. 그 아쉬움과 그리움이란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싶은 동경이다.” 

 

언젠가 나는 끔찍한 범죄 피해자들이 그들의 가해자들과 상면하는 토크쇼를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17세의 한 소녀가 4년 전 자기를 폭행해 아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죽은 줄 알고 버리고 떠났던 남자에게 방송 중 말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열일곱 번의 수술을 받고 얼굴을 완전히 새로 정형해야 했는데도 소녀는 범인에게 말했다. 

 

“난 당신이 내게 한 짓을 미워하지 난 당신을 미워하진 않아요. 그리고 난 내 삶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 당신을 용서할 것을 배워야 했어요.” 

 

이날까지 내가 들어 본 가장 감동적인 말이다. 그 순간 소녀는 우리가 왜 여기 있는 지를 말해 준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것을 배우기 위해, 두려운 인간 조건을 초월하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게임을 즐기는 거였어요. 그랬더니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게 됐어요.”

 

미국여자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US 오픈에서 우승한 전인지(20)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한국 골퍼, 특히 낭자들이 유독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로 젓가락, 바느질, 활쏘기 문화 등에 주목하는 전문가들이 있다고 한다. 8·15 광복 전후 내가 어렸을 땐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치기, 옛날 엽전을 종이로 싸서 두 끝을 구멍으로 내보내어 갈래갈래 찢어서 이를 많이 차기를 내기하는 장난감 제기차기, 구슬치기 아니면 나뭇가지 꺾어 손에 알맞게 다듬은 나무때기로 짤막한 나무때기를 쳐서 그 거리를 재서 승부를 가리는 아이들 놀이 자치기가 애들 장난감의 거의 전부였었다. 

 

이런 놀이에 온 정신을 팔다 보면 우리 어린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놀이의 신동 달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천국이 따로 없다. 그 후로도 살아 온 세상살이,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모든 것을 소꿉놀이하듯 할 때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앤쓰로포신 에폭, 인간으로 시작된 신기원이란 뜻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착각에서 일으킨 문명이란 것이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지구와 인류의 종말이 올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가 담긴 말이다. 여기서 우리 신화학자 조세프 캠벨의 말을 되새겨보자. 

 

“세상 사람들 반은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적인 전통의 메타포를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또 다른 반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 결과 메타포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종교적인 메타포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건대 소위 무신론자들이란 신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중심 그것도 백인남성 위주의 그런 편파적인 신을 부정할 뿐이다. 미국의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1924-87)이 말했듯이 신이란 개념이 어떤 타당성이나 용도가 있다면 우리를 좀 더 크게,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그럴 수 없다면 그런 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동양에서는 예부터 인간이 자연에 군림하는 게 아니고 그 일부에 불과함을 주지해오지 않았는가. 그뿐만 아니라 자업자득이라고 만인과 만물을 대하는 내 언행이 곧 나 자신에게 하는 짓임을 익히 알아 오지 않았나. 물론 동양도 이미 많이 서구화되었지만 서양의 근시안적인 물질문명에 뇌화부동하고 있는 현실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내세를 담보로 독선 독단적인 신의 이름을 빙자해서 현세에서 성직자들과 선민들이 그들의 세속적인 특권을 행사해 왔다. 십자군이다, 식민지다, 노예제도다, 산업혁명이다, 경제개발이다 해가면서 말이다. 

 

어떻든 이 아름다운 지구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말고, 잘 보존해서 우리의 후손들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낙원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4.04 10:26 수정 2026.04.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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