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던 도깨비는 익숙하다. 장난스럽고 때로는 두려운 존재. 인간 곁에 머물며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건네던 상징이다. 그러나 시인 육근철은 그 도깨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간다.
지난달 출간된 시집 『도깨비의 춤』은 고전적 도깨비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이를 양자과학의 세계와 연결한다. 감정의 대상이던 도깨비는 이 시집에서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재정의 된다.
작품 속 도깨비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형상이 아니다. 관측하는 순간 달라지고, 잡으려 하면 사라지는 존재. 확률로만 존재하며 불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양자의 성질을 닮아 있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 역시 연속된 흐름이 아니라 끊어지고 점프하는 불연속의 구조임을 드러낸다.
이 시집의 핵심은 ‘불연속’이다. 시는 이어지지 않는다. 행과 행 사이를 건너뛰고, 의미는 직선이 아니라 파편처럼 튀어 오른다. 마치 양자가 궤도를 점프하듯, 독자의 사고 역시 순간적으로 이동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서정시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리듬이다.
특히 ‘도깨비의 춤’이라는 표제작에서 이러한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춤은 연속된 동작이 아니라 끊기고 이어붙여지는 파편의 집합이다. 시인은 이를 “문지방을 올라탄 경계의 몸짓”으로 표현하며, 현실과 비현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를 형상화한다.
이 지점에서 도깨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익숙하지만 설명되지 않는 것. 가까이 있지만 붙잡히지 않는 것. 시집은 그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또 하나의 축은 ‘질문’이다. 시인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왜 인간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멈춘다.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물음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 감정과 사고의 경계를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결국 『도깨비의 춤』은 도깨비를 다시 쓴 시집이 아니다. 인간을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고전의 상징을 빌려 과학의 언어로 확장하고, 그 위에서 삶의 구조를 다시 묻는다.
출간 한 달, 이 시집이 조용히 확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익숙한 단어로 시작하지만, 끝내 전혀 다른 세계에 도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읽는 순간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읽고 난 뒤에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어렵다.
『도깨비의 춤』은 지금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계는 과연 하나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