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중동발 에너지 위기, 구조적 대책 세울 때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중동의 지정학적 불안은 늘 국제정치로만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곧장 유가와 가스 가격, 물류비, 생산비, 물가, 금리, 성장률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안보의 문제로 번진다. 최근 OECD도 중동 분쟁의 진전과 에너지 시장 교란이 2026년 세계 성장에 부담을 주고, 물가 압력을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OECD2026년 세계 GDP 성장률을 2.9%로 전망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더 크게 오를 경우 세계 성장률이 추가로 낮아지고 소비자물가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G20 물가상승률 전망도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도 이미 같은 위험을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 관련 리스크가 국내 물가, 성장, 금융안정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살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중동의 충격이 더 이상 먼 나라의 전쟁 뉴스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체감 물가와 기업 경영, 가계 부담에 직결되는 변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문제는 외부 충격 그 자체보다, 그 충격을 고스란히 증폭시키는 우리 경제의 구조에 있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산업국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의 에너지 공급에서 수입, 특히 석유·천연가스·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수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석유 무역망이 흔들리면 수입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 구조를 가진 한국으로서는 이러한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질문이 유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가였다면, 이제는 한국 경제는 왜 같은 충격에 반복적으로 흔들리는가를 물어야 한다. 에너지 정책을 단순히 전기요금이나 유류세 조정의 문제로만 다루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에너지 정책은 곧 산업정책이며, 외교정책이며, 안보정책이고, 국가 운영의 기본 인프라 정책이다.

 

첫째, 에너지 안보를 공급 안정성 중심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에너지 시장의 본질은 더 이상 싼 자원을 얼마나 들여오느냐만이 아니다. 위기 시에도 필요한 자원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공급선 다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원유와 LNG의 도입 구조, 장기 계약 비중, 비상시 우회 물류망, 전략 자산 확보 방식까지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수입국인 한국은 특정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체 경제에 과도하게 전이되지 않도록, 자원외교와 통상외교를 연계한 장기 계약 체계를 더 정교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다.

 

둘째, 비축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전략비축유와 가스 비축능력은 국가 위기대응의 핵심이다. 그러나 단순히 저장량만 늘린다고 충분하지 않다. 어느 산업에 어떤 순서로 공급할 것인지, 위기 단계별 방출 기준은 무엇인지, 민간 재고와 공공 비축을 어떻게 연동할 것인지, 데이터 기반으로 누가 판단하고 책임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OECD가 지적한 것처럼, 호르무즈 해협 운송 차질이나 에너지 시설 폐쇄가 장기화되면 성장과 물가에 훨씬 더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비축 정책은 저장탱크 확충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적 기준과 정보체계, 민관 협력체계, 산업별 우선순위 체계를 포괄하는 스마트 비축 시스템으로 발전해야 한다.

 

셋째, 현실적 에너지 믹스를 재정립해야 한다.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이념적 단선성이다. 원전만이 해답이라고 말하는 것도 단순하고, 재생에너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도 현실을 과소평가한다. IEA는 한국이 탄소중립 경로로 가기 위해 원자력 확대와 함께 재생에너지 확대를 병행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도, 한국은 가용 부지 부족, 높은 인구밀도, 많은 산림 비중, 주변국과의 전력망 연계 부족 등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에 구조적 제약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것은 곧 한국의 에너지 전환이 구호가 아니라 정교한 설계의 영역임을 뜻한다. 원전, LNG,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수소, 전력망 보강을 포함한 복합적 조합이 필요하다.

 

넷째, 에너지 정책과 산업 구조 혁신을 함께 가야 한다.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공급만 늘리겠다는 접근은 한계가 분명하다. 반도체, 배터리, AI 인프라, 첨단소재, 디지털 제조, 고효율 설비, 전력관리 시스템 등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에너지 효율 혁신을 기업 경쟁력의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 결국 에너지를 덜 쓰고도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중동발 충격을 견디는 가장 근본적인 방어선이다.

 

다섯째, 에너지 안보를 국가 거버넌스의 중심 과제로 격상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종종 요금정책, 환경정책, 산업정책, 지역수용성 문제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위기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위기는 항상 복합적으로 온다. 유가가 오르면 물가가 오르고, 물가가 오르면 금리와 소비가 흔들리며, 생산비 부담은 기업투자를 위축시키고, 그 여파는 다시 고용과 지방경제로 내려온다. 따라서 에너지정책은 부처별 분산 관리가 아니라 대통령실·국무조정·산업·기재·외교·환경·국토가 긴밀히 연계되는 국가 전략 체계 안에서 운용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방정부는 지역 단위 분산형 에너지, 공공건축물 효율화, 산업단지 전력관리, 재난 대비 연료 공급망 확보 등에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섯째, 국민에게도 정직한 설명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안보는 모두 비용을 수반한다. 그러나 더 큰 비용은 아무 준비 없이 위기를 맞는 데서 발생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기영합적 구호가 아니라, 어떤 에너지원을 왜 얼마만큼 활용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국민 부담은 어떻게 조정하고 산업 경쟁력은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정직하고 일관된 설명이다. IEA도 한국이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조기·지속적·의미 있는 이해관계자 참여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에너지정책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국민적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중동발 충격은 일시적 악재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우리 경제가 비슷한 방식으로 흔들린다면, 그것은 외부 변수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구조의 문제다. 위기 앞에서 필요한 것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구조개혁이다. 에너지정책을 단순한 수급 관리의 하위 정책으로 둘 것이 아니라, 경제안보와 산업 경쟁력, 국가 생존전략의 중심축으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높은 기술력과 제조 경쟁력,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그 경쟁력도 안정적인 에너지 기반 위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가 없으면 산업 경쟁력도, 물가 안정도, 국민의 삶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중동발 위기를 또 한 번의 국제 변수로 흘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국가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는 이제 우리 정책의지에 달려 있다.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미래 과제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가장 무겁게 다루어야 할 현재의 국가 과제일 것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3.30 01:52 수정 2026.03.30 01:53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공공정책신문 / 등록기자: 김유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