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첫날밤의 기억

붉은 와인의 속삭임

말을 고르고, 표정을 다듬고, 서로를 천천히 읽어내는 그 시간

첫날밤 20호 아크릴, 옷, 황토

 

 

 

 

두 개의 와인잔이 마주 놓여 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채워진 붉은 색.

 

꽃은 의도적으로 아름답고, 테이블 위의 질서는 지나치게 정돈되어 있다.

 

모든 것은 서로를 향하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장면은 고요하다기보다 멈춰 있다.

 

설렘은 시작의 감정이 아니다. ‘시작 직전’의 감정이다. 

 

말을 고르고, 표정을 다듬고, 서로를 천천히 읽어내는 그 시간. 

 

행동이 아니라 주저함과 간격 속에서 설렘은 가장 또렷해진다. 시간이 지나며 관계는 익숙해진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지만 속도를 높인다.

 

우리는 더 빨리 말하고, 더 쉽게 반응하며, 서로를 충분히 보지 않는다.

 

그래서 설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워진다.

 

지혜는 단순하다. 설렘을 유지하는 방법은 새로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이미 아는 사람 앞에서 다시 한 번 멈추고, 다시 한 번 고르고,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일.

 

그때 관계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의 밀도를 회복한다.

 

그리고 그 순간, 첫날밤은 다시 현재가 된다.

 

 

 

작성 2026.03.24 10:41 수정 2026.03.24 10:41

RSS피드 기사제공처 : 더위즈덤 / 등록기자: 남보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