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을 가도 대화의 종착지는 결국 ‘재테크’다. 부동산과 주식, 상승장과 하락장의 기로에서 기회와 타이밍을 논하는 목소리들로 가득하다. 대화의 온도는 뜨겁지만, 그 열기 속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들은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나 역시 투자할 여력도, 그 세계에 발을 들일 자본도 없다. 그저 한 직장인으로서 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사실 하나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세상은 말한다. 재테크에 어두운 삶은 뒤처지는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삶의 가치가 자산의 크기로만 측정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수호해야 할 것은 통장 잔고의 숫자가 아니라, 거센 세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그의 명문 ‘누실명(陋室銘)’에서 “산부재고 유선즉명(山不在高 有仙則名)”이라 읊었다. 산의 위대함은 높이에 있지 않고, 그곳에 신선이 거처하기에 이름이 난다는 뜻이다. 이는 물질의 외형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통찰한 문장이다. 집의 평수가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정신을 가진 사람이 사느냐가 본질이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많은 이들이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을 걱정하곤 하지만, 정작 물려줘야 할 것은 삶을 대하는 당당한 태도일지 모른다. 자녀들 또한 부모가 그러했듯 자신의 역량으로 삶을 일궈낼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요동치는 시장의 숫자나 물질적 유산보다 훨씬 단단하고 값진 정신적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누추한 방 한 칸일지라도, 그 안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고 성실히 하루를 일구는 사람이 있다면 그곳은 이미 하나의 ‘높은 산’이다. 세상의 잣대로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그가 품은 사유와 자존감은 결코 낮지 않다. 재산이 삶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 품격을 만드는 법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누군가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해 버린다. 그러나 삶은 타인과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완성해가는 고유한 서사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방향마저 틀린 것은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선언은 오만이 아니라 지독한 자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존재의 존엄을 놓지 않겠다는 결연한 다짐이다. 재테크의 광풍이 부는 시대라고 해서 모든 이가 그 흐름에 올라탈 필요는 없다. 어떤 이는 자본을 키우고, 어떤 이는 삶의 가치를 지킨다. 어쩌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투자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남들이 말하는 높은 산에 오르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가장 높은 곳으로 만든다. 나의 자존은 시세에 흔들리지 않으며,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깊고 높은 명산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