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은 언제나 무용한가

방황의 쓸모

                                                                                                                                                      박근필(수의사/작가/칼럼니스트)


나는 한때 배거본더였다

10년 가까이 운영하던 병원을 정리한 뒤, 마흔에 찾아온 마음의 지진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 후 몇 달간 나는 방황의 시기를 가졌다

나를 탐구하고 미래를 거듭해서 되물었다. 그 시간 동안 마음이 편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배거본딩의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도 길 잃은 양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내겐 더없이 귀한 시간이었다. 왜 마음의 지진이 왔는지는 추후 칼럼에서 따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배거본딩은 여행이 아니다

배거본더(vagabonder)는 원래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자'를 뜻한다. 배거본딩(vagabonding)은 그 행위, 즉 오랜 기간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떠도는 삶의 방식을 가리킨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을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오랜 기간 자신을 옭아매 온 삶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방황의 시간과 성찰의 시간을 허락하는 사람. 그가 배거본더다. 배거본딩은 단지 목적지 없는 여행이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치기 위해 떠나는 방황이다. 방향이 ''를 향해 있을 때 비로소 그 방황은 배거본딩이 된다.


신호를 무시하지 말자

현실이 불만족스럽거나 스스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스친다면 그것은 분명한 신호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자신만의 방황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신호다. 이 신호를 무시해선 안 된다. 물론 현재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자신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배거본더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 이건 아닌데'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

문제는 결국 용기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용기가 없다면 일부라도, 잠시라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용기라도 내야 한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이라고 미루면 그 기회는 오지 않는다. ',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 강제로라도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내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용기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늦게라도 용기를 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방황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배거본딩의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왜 지금의 현실이 불만족스러운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바꿀 수 있는지 답을 찾는 시간이다. 내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시간이다. 고요한 곳에서 사유하며 보낼 수도 있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하나씩 해보며 보낼 수도 있다

독서가 될 수도 있고, 글쓰기가 될 수도 있고,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될 수도 있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를 향해 있다면 그것이 배거본딩이다. 내겐 책이 도움이 됐다.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기도 했고 길라잡이 역할도 해주었다.


이야기로서의 가치

배거본딩의 시간 동안 겪은 것이 희귀하고 굵직할수록 이야기로서의 가치는 분명히 커진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거창하고 특별한 경험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소소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그것을 견디고 극복해 가는 과정 역시 충분히 의미 있다. 사람들은 그런 진솔한 이야기에 더 깊이 공감한다.

인생이 무료하거나, 삶이 불만족스럽거나, 내 정체성이 혼란스럽다면 가능한 한 빨리 배거본더가 되어 보길 권한다. 잠시 멈추는 것은 끝이 아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내딛는 첫걸음이다.

지금 당신의 삶은 당신이 진정 원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라고 바로 대답할 수 없다면, 미루지 말고 한 번쯤 배거본더가 되어 보는 게 어떨까.


작성 2026.03.23 10:12 수정 2026.03.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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