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시간을 밝히는 책방, 화수동 ‘모도’

“모 아니면 도”에서 시작된 작은 선택

책을 넘어 사람을 잇는 동네 사랑방

사라질지도 모르는 골목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책방 ‘모도’를 운영하는 ‘모’대표 문서희 님이 서가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책방모도

골목 끝에서 만난 한 권의 풍경

 

2026년 3월 21일 오후 2시, 햇살이 유난히도 부드럽던 주말. 골목을 따라 걷다 연한 민트색 외벽의 작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벽에 기대어 선 자전거와 ‘책’이라 적힌 나무 간판이 이곳이 평범한 가게가 아님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상보다 더 다정한 풍경이 펼쳐졌다. 벽에는 그림과 포스터가 빼곡히 걸려 있었고, 작은 선반 위에는 책과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었다. 한쪽에는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만든 달력도 걸려 있었는데, 날짜마다 빼곡히 적힌 표시들이 이곳의 시간을 짐작하게 했다.

 

도심의 번잡함과는 다른 속도로 흐르는 공간.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되는 곳. 화수동 골목 한켠, 책방 ‘모도’을 운영하는 모 대표인 문서희 님에게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화수동 골목에 자리한 책방 ‘모도’의 외관. 자전거와 작은 간판이 공간의 분위기를 전한다.. 사진=볕뉘뉴스

 

“모 아니면 도”로 시작된 책방

 

Q. 사실 인터뷰가 처음이라 조금 떨렸습니다. 예전 블로그를 얼핏 보니, 처음에는 두 분이 함께 시작하신 것 같더라고요. ‘모도’라는 이름도 그때부터 사용하신 건가요? 어떻게 책방을 시작하시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2018년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 시절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으로 지낼 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옆에 작은 책방을 만드셨는데, 그 책방 하나가 동네에 예쁜 카페나 소품샵을 생기게 하며 변화를 주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인천의 모 문화재단에서 일하며 돈을 모아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모도’라는 이름에 대해, 방문한 주민 중 인천 ‘모도’라는 섬 출신이라고 하신 분도 있었지만, 그곳에서 따온 이름은 아닙니다. 서점 창업을 고민하던 술자리에서 지인이 “서점을 한다는 게 진짜 모 아니면 도 같다”라고 지나가듯 한 말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어요. 초기에는 ‘모 대표, 도 대표’라는 이름으로 두 명이 공동 창업했지만, 현재는 거의 1인 체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책과 소품, 그리고 동네의 시간이 함께 쌓인 책방 내부 모습. 사진=볕뉘뉴스

 

Q. 제주에서의 경험이 특히 인상적이셨던 것 같은데요. 당시 어떤 경험이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대학 시절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텝으로 지내면서, 사장님이 작은 책방을 만드는게 꿈이라고 하셨어요. 외딴 곳에 만든 작은 책방에 누가 들러서 책을 구입할까 걱정이 되었는데, 오히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동네 분위기를 바꾸는 중심이 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게 됐어요.
 

책방 하나가 주변에 카페나 소품 가게를 생기게 하고, 여행자와 지역 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공간이 되는 걸 보면서 ‘나도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모도’를 운영하는 데에도 그때의 경험이 많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번화가의 기억, 그리고 화수동이라는 선택

 

Q. 사실 제 배우자가 이 근처에서 자랐습니다. 송림동과 송현동에서 지내면서 동인천이 예전에는 굉장히 번화한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요. 그런 기억 때문인지 화수동은 조금 더 조용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이곳에 자리 잡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A. 저도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해 대한서림이나 배다리 등 동인천 일대를 자주 다녔습니다. 책방을 열 때 평범한 1, 2층 상가보다는 제주도에서 봤던 서점처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고 싶었는데, 마침 임대료도 저렴하고 동네 느낌도 좋은 화수동의 건물을 발견했죠.
 

막상 와보니 역사도 깊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동네더라고요. 지금은 로컬 단체나 기관의 제안을 받아 화수동 일대를 산책하며 책 이야기를 나누는 투어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방, 동네의 사랑방이 되다

 

Q. 예전에 제가 평생학습원에서 일할 때 도서관 관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때 ‘도서관은 마을 사랑방’이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이곳 ‘모도’를 둘러보면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대표님께서는 이 공간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독서 모임에 오신 분들끼리 친해져서 동네 친구가 되기도 하고, 서로 SNS 맞팔을 하기도 하시죠.
 

동네 분들이 팩스나 복사가 필요할 때 도서관처럼 편하게 들르시기도 해요. 또 화수동 골목이 밤에는 조금 어둡고 인적이 드문데, 책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안전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고 말씀해 주시는 단골손님들도 계셔서,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책을 읽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진 ‘모도’의 내부.. 사진=볕뉘뉴스

 

책장 사이를 천천히 둘러보면, 이곳이 단순히 정리된 서점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취향이 축적된 공간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책과 소품, 그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머무르는 공간’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취향을 묻고 책을 건네는 방식

 

Q. 서점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책들이 참 다양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개성 있는 큐레이션을 내세운 서점들도 많은데요. ‘모도’만의 기준이나 방향성이 있다면 무엇인지, 또 일부러 들이지 않는 책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저희는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는 ‘잡식’ 동네 책방입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가치관 때문에 “내가 이렇게 성공했으니 너도 따라 해” 식의 성공 신화를 강조하는 자기계발서나 주식, 비트코인 관련 경제 서적은 큐레이션에서 제외하는 편입니다.
 

책의 좋고 나쁨을 제가 억지로 규정하기보다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손님들이 추천을 원하시면 먼저 어떤 책을 좋아하시는지 취향을 물어본 뒤 맞춤형으로 권해드리고 있습니다.

 

 

책방이 사람을 잇는 순간들

 

Q. 최근 뉴스나 SNS에서 ‘청소년 책 사주기 프로젝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학생이 인턴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작은 서점이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현장에서 느끼시는 변화가 궁금합니다.
 

A. ‘청소년 책 사주기 프로젝트’는 청주의 한 서점인 '책방 앤'에서 시작된 캠페인인데, 한 손님께서 인천에도 이 캠페인을 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으로 저희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누적 후원금이 100만 원을 훌쩍 넘었고 30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방문해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또 최근에는 제천 간디학교 학생이 서점 일을 배우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와서 인턴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심리학과 철학을 좋아하는 친구라 서점의 빈 코너를 채워보려고 하고 있어요.

 

책방이 어떤 이미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하며 그 친구가 “서점도 서비스직이었네요”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책을 다루는 공간이지만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라는 걸 느낀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더해, 송도에 있는 체드윅 국제학교 재학생에게도 서점의 한 칸을 내어주어 자신만의 큐레이션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집을 사러 오던 학생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아올 때면, 서점이 동네와 손님들과 함께 성장하고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실감합니다.

 

 

동네를 걷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

▲화수동 일대를 걸으며 지역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책방모도

Q. 화수동 일대를 걸으며 일꾼교회 등 지역의 공간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책방을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인천에 대한 책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화수동 역시 동일방직이나 일꾼교회, 만석부두처럼 이야깃거리가 많은 공간들이 많은 동네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들을 책방 안에만 두기보다 직접 걸으며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네를 함께 걸으며 공간에 얽힌 이야기와 책을 함께 나누는 산책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로컬 단체나 기관의 제안을 받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네를 위한 작은 실천

 

인터뷰 도중, 벽에 걸린 커다란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숫자 아래로 빼곡히 적힌 표시들이 이곳의 일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제작된 ‘물때 달력’이 책방 한켠에 걸려 있다.. 사진=볕뉘뉴스

Q. 책방 한켠에 있는 달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언뜻 ‘물때’가 표시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제작하신다고 하셔서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A. 네, 화수동에는 아직 배를 타시는 어르신들이 계셔서 물때가 표시된 달력이 꼭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매년 새마을금고에서 나눠주는 달력 수량이 턱없이 부족해 어르신들이 발을 동동 구르시는 걸 보고, 서점 오픈 1주년 기념으로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 연말마다 이 달력만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계실 정도라, 올해로 벌써 7년째 매년 꾸준히 제작하고 있습니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공간, 이어질 이야기

 

Q. 제가 사는 동네에서도 도시 재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되는데요. 화수동 역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모도’의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맞아요. 현재 화수동 일대가 재개발 관리처분 인가를 앞두고 있어서, 허가가 나면 이주가 시작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 동네가 가진 분위기와 이야기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하고, 앞에서 언급했지만 인턴 학생과 송도 국제학교 학생에게 서점의 한 칸씩을 내어주어 각자의 큐레이션 공간을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만약 이 공간이 사라지게 되더라도, 서점은 포기하지 않고 인천 내 다른 곳에서 ‘모도 시즌 2’로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골목에 남는 빛

 

인터뷰를 마치고 골목으로 나섰다. 책방 앞에 놓인 자전거와 따뜻한 햇살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평소 달리기도 꾸준히 하고 계시냐는 물음에, 다음 날(22일) 하프 마라톤에 참가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상 속에서도 또 다른 리듬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그 걸음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그리고 그 곁에서 ‘모도’ 역시 오랫동안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작성 2026.03.22 17:26 수정 2026.03.2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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