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최진실 기자] 인생은 흔히 항해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 항로가 처음 그린 설계도대로 풀리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가 드물다. 우리는 때로 폭풍우를 만나 경로를 수정하고, 때로는 믿었던 나침반이 흔들려 망망대해를 헤매기도 한다. 나 역시 맨 처음 꿈은 피우지 못했다. 세상 이곳저곳을 두루 경험하며 파도를 넘어왔다.
꺾인 날개, 그 위에서 시작된 공직의 보람
나의 어릴적 꿈은 소박했다. 평생 교직에 헌신하신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그 대를 잇는 교사였다. 가장 빠른 길인 사대부고에 진학했으나, 운명의 수레바퀴는 나를 전혀 다른 공군사관학교의 푸른 창공으로 이끌었다.
남아로 태어나 공사 생도의 길을 걷는 것은 어찌 보면, 선택받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자부심이었다. 생도 생활의 강인한 정신력과 엄격한 규율은 내 삶에 뿌리를 내려 지금도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틈틈이 서예를 가까이하며 ‘국민전 입선’의 영예를 안고, 성무제 전시를 이끌며, 문무를 겸비한 인문학의 향기를 채우던 시절.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했다. 하지만, 하늘의 길은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비행 훈련 중도 탈락 (Wash-out)으로 조종간을 놓아야 했던 좌절의 순간을 맞았다. 내 인생의 항로는 잠시 멈춰 선 듯했다. 같은 팀원인 두 동기생은 조종사의 길을 걸으며 삼성장군과 투스타로 진급, 영공수호의 산 주역이 되었다. 한배를 탔던 인연은 나의 기쁨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론, 가슴 시린 통증으로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절친했던 동기의 순직이다. 내 신혼여행까지 동행하고, 내가 그 결혼식의 사회를 봐주었던 분신 같은 친구. 그는 야간비행 중 젊은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장례 주관 인사장교로서 친구를 다시 볼 수 없는 다른 길로 직접 떠나보내야 헀다. 어린 딸과 기절한 친구 부인의 애절함은 먼저 간 친구의 몫까지, 남겨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맹세의 눈시울을 안겨 주었다.
나는 한 번뿐인 삶. 더 넓은 세상의 길을 가고 싶었다. 꼬박 일년 간 집을 떠나 사무관 임용시험 준비에 사투를 걸었다. 공직의 길에 들어선 후, 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몰두했다. 해외 주요 박물관 내 한국관 설치, 한식 레시피 보급, 해외 한국어 교실 운영 등 우리 문화를 세계에 심어갔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그리고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개관으로 외화 획득에 일조했다. 구석구석 볼거리와 관광 축제를 육성하며 국민의 삶에 쉼표를 찍어준 시간들은 내게 공직자로서의 무한한 보람을 안겨 주었다, 가슴에 늘 남아 있던 못다한 교사의 꿈도 초기에 교육부를 자원 교육행정을 펄쳤고, 어느 날 아버님의 예산 삽교초등학교 제자였던 가수 조영남 씨와 대화하며, 사제 간의 끊어지지 않는 정을 대리 체감하며, 비록 교단에 서지는 못했지만, 미련을 풀 수 있었다.
암초에 걸린 항해, 촌철살인의 지혜로 위기를 넘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회식 날, 각국 선수단이 입장을 위해 보조경기장에 대기하던 중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당황한 장재근 선수 등 한국 선수들이 비를 피해 대열을 이탈하자, 외국 선수들까지 동요하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입장 시간이 눈앞인데 대열은 순식간에 오합지졸이 되었다. 나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대로 행사를 망치는가' 싶은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비에 젖어 휘날리던 각 나라의 국기였다. 나는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신, 기수들에게 국기를 높이 들고 흔들게 했다. 자신의 국기를 본 선수들이 본능적으로 자석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언어를 넘어선 '촌철살인의 지혜'가 국가적 망신의 위기를 찬란한 입장식으로 바꾼 극적인 순간이었다.
2014년 인천 대회의 기인수를 위해 중국 광동성에서 행사를 치를 때도 고난은 비껴가지 않았다. 한류 가수 비(Rain)가 공연 리허설 무대에 들어서자, 중국 학생들이 연습 대오를 이탈해 그를 에워싸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자, 한류 인기의 시샘일까. 중국 측은 행사 전날 돌연 무대 축소를 통보해 왔다. 밤을 새워 행사 규모를 줄이고 동선을 재조정하며 쏟아냈던 그 울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인생 후반에 공기업 경영인으로 일할 때다. 나는 년간 매출 1조2천억을 1조4천억 규모로 성장 궤도에 올렸다. 사업확장에 내 직함을 팔아 신규직원 채용에 사욕을 챙긴 직원의 인사 사고가 있었다. 언론은 한동안 시끌버끌 했다. 나는 평생 쌓아온 명예가 암초에 걸려 침몰하는 듯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아직도 청탁과 달콤한 유혹의 손길이 도처에 깔려 있는 세상이다. 비양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정도의 길이 나의 가치관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인생의 밤을 지나는 이들에게
지금 혹시 계획했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고 있는가.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 받아 항해를 포기하고 싶은가. 나의 살아온 인생의 체험을 건낸다. 첫째. 가는 길에 중도 탈락(Wash-out)은 날개 꺾인 추락이 아니라 새로운 이륙이다. 막힌 길은 하늘이 더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한 잠시 항로를 변경한 것임을 믿어라. 둘째, 삶 위기의 순간 ‘본질’을 잡으면 길은 열린다. 86아시안 게임 흩어진 선수단의 아수라장을 보자. 본질은 거창한 매뉴얼이 아니라 각 나라 ‘국기’였다. 복잡한 계산을 버리고 본질을 찾아라. 촌철살인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셋째, 암초보다 무서운 것은 ‘양심의 침몰’이다. 매 순간마다 양심을 가리지 않는 정도의 길을 걸어라. 훗날 가장 큰 자유를 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인 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걷느냐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두운 밤을 지나 밝은 태양 아래 섰을 때, 부끄러움 없이 웃을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가장 위대한 성공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만의 가장 소중한 길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양홍석
전)문화체육관광부 일반직고위공무원
전)2014인천아시안게임 행사본부장
전)강원랜드 카지노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