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성향 콘텐츠 시장, 게임에서 AI 드라마로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2026년, 중국 여성향 콘텐츠 시장에 뚜렷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한쪽은 월 매출 2억 위안(약 410억 원)을 기록하는 초대형 게임 시장이고, 다른 한쪽은 제작비 5만 위안(약 1,000만 원)으로 뚝딱 만들어낸 AI 드라마다. 그런데 놀랍게도 후자가 전자의 아성에 서서히 균열을 내고 있다.
'게임'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던진 라이트 유저들이 'AI 드라마'라는 가벼운 대안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여성향 콘텐츠 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이다.

충성도 높던 여성 유저들, 왜 게임을 떠나는가
여성향 게임 시장은 '일강다약(一强多弱)'의 구도가 굳어져 있다. 업계 1위 '연여심공(恋与深空)'은 월 매출 1억 위안(약 200억 원)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만, 나머지 게임들은 대부분 수천만 위안(약 수억~수십억 원)대에서 맴돌고 있다. 2025년 여성향 게임 시장 규모는 100억 위안(약 2조 원)을 돌파했지만, 이 화려한 수치 이면에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
가장 큰 문제는 '게임 피로감' 이다. 한 플레이어의 토로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번에 648위안(약 13만 원)을 써가며 카드를 뽑고, 매일 출근하듯 일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요? 내가 지금 게임 회사에 취직한 건지, 연애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을유(乙游) 게임의 핵심 수익 모델은 '한정 카드 풀(限定卡池)'이다. 특별 이벤트 기간에만 얻을 수 있는 캐릭터 카드를 뽑기 위해 플레이어는 현금을 결제한다. 문제는 원하는 카드를 얻기까지的天文學적인 확률과, 게임 내 재화를 모으기 위해 매일 반복해야 하는 '일일 임무'의 노동이다.
지난 2월, '연여심공(恋与深空)'은 홍콩 액션 영화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훙자반(洪家班)'을 섭외하고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역대급 '복고풍(古风)' 이벤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월 매출이 2억 800만 위안(약 410억 원)으로 전월 대비 21% 하락하며 시리즈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 아무리 화려한 이벤트를 준비해도, 게임 시스템 자체에 지친 유저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AI 드라마, '무료'라는 파괴적 혁신을 들고오다
게임사들이 고심하는 사이, AI 드라마는 '가성비'라는 무기로 무장하고 여성 유저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AI 드라마의 제작비는 전통 방식 대비 90% 감소했다. 일부 선두 스튜디오는 분당 300~500위안(약 6만~10만 원) 수준으로 비용을 억제하며, 100분 분량의 AI 드라마 한 편을 고작 5만 위안(약 1,000만 원) 에 제작할 수 있다 . 반면, 여성향 게임 개발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더 가슴 아픈 현실은, 플레이어가 수백, 수천 위안을 써가며 간신히 뽑아낸 '나만의 가상 남자친구(专属老公)'를, AI 드라마는 단 5만 위안(약 1,000만 원)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매일 접속해 임무를 수행하며 '관계 유지'에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올해 춘제(春节, 설날) 기간, 텐센트비디오(腾讯视频) 산하 AI 드라마 플랫폼 '파이어 드래곤 맨화극(火龙漫剧)'의 인기 순위 TOP5 중 두 작품이 을유(乙游) 장르였다. 그중 '을유계통각성(乙游系统觉醒)'은 3월 인기 순위 1위에 올랐다 .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대소저, 니급집행조성료啥了(아가씨, 당신 악마 집사를 어떻게 만들었나요)'다. 이 작품은 2월 초 출시 이후 단숨에 인기 순위 1위에 오르며, 2위와의 격차를 무려 78.3% 포인트 차이로 벌렸다 . 데이터 분석 플랫폼 '쥐차차(剧查查)'에 따르면, 춘제 기간 실사 AI 드라마 주간 TOP10 중 여성향 작품이 8개를 차지했고, AI 드라마 주간 방영 TOP10 중에는 여성향이 5개를 차지했다 .
가시적 전환: 게임에서 AI 드라마로 이동하는 유저들의 심리
과연 누가, 왜 이동하고 있을까? 흥미롭게도 AI 드라마가 여성향 시장에서 빼앗아 가는 핵심 유저층은, 스토리와 그래픽, 캐릭터 표현력 등 모든 면에서 높은 수준을 요구하며 목소리도 큰 '핵심 유저'들이 아니다. 그 대상은 애초에 게임과 게임 커뮤니티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쉽게 흔들리는 '라이트 유저' 와 일반 대중(泛人群) 이다 .
2년 전 '연여심공(恋与深空)'의 돌풍에 힘입어 '사이버 남친' 육성에 뛰어들었던 현실파 게이머 우징(吴静)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게임을 접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매일 똑같은 일일 임무를 반복하려니 정말 지루했어요. 그만둘 생각이었지만 마땅한 대체재가 없었죠."
그녀가 AI 드라마를 접한 건 우연이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남자 주인공들 그래픽도 정교해서 을유(乙游)랑 큰 차이가 없었고, 스토리도 엉성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국산 을유(乙游)의 여주인공들이 '가짜 대표 여성'처럼 느껴질 정도로, 드라마 쪽이 훨씬 다양한 스토리를 보여주더라고요."
'공짜로 즐기는 감정적 가치(不要钱的情绪价值)' 와 '매일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게임(每日打卡做任务的乙游)' 사이에서, 라이트 유저들의 선택은 이미 명확해졌다 . 그리고 바로 이들이야말로 여성향 게임이 시장을 외부로 확장할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여성향 게임 시장은 '일강다약(一强多弱)' 구도 속에서 신규 유저 유입이 점점 더디다. 한때 '연여심공'의 3D 그래픽 돌풍으로 유입됐던 라이트 유저들조차 점차 게임을 떠나고 있다 . AI 드라마는 이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기술이 만든 '감정의 가시화'
AI 드라마의 약진은 단순히 '싸다'는 이유만이 아니다. 기술의 진보가 여성 유저들이 원하는 '감정'을 가시화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성향 콘텐츠는 남성향과 달리 캐릭터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감정 표현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기술적 한계로 AI 캐릭터의 표정이 경직되어 '감정 전달'이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대소저, 니급집행조성료啥了(아가씨, 당신 악마 집사를 어떻게 만들었나요)'의 사례를 보면, 주인공 중 한 명인 '라일(莱尔)'은 슬플 때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눈물을 흘리고, 놀랄 때는 안구가 미세하게 떨린다. 또 다른 캐릭터 '예가득(耶加得)'은 화가 나거나 질투할 때 눈썹이 살짝 눌리며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인 표정을 짓는다 .
이러한 고빈도 표정 업데이트와 감정 변화는 AI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가능해졌다. 제작사 '쥐르루AI(巨日禄AI)'는 지난 3개월 동안 모델을 15회 이상 업데이트하며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 표현력을 극대화했다 .
또한, 광원과 그림자 표현도 정교해졌다. 촛불, 달빛, 마법 빛이 각각 제 역할을 하며, 캐릭터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러한 '영화 같은 감성' 은 여성 유저들이 AI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
그러나 넘어야 할 산: '핵심 유저'의 감정 장벽
AI 드라마의 확장 과정에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핵심 을유(乙游) 유저들이 쌓아 올린 높은 '감정 장벽' 이다.
핵심 유저들에게 '을유(乙游) 남친'은 단순한 가상의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신념과도 같다. 이들은 캐릭터 설정의 완성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저작권 귀속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
문제는 AI 드라마의 캐릭터들이 기존 을유(乙游) 게임의 캐릭터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여러 을유(乙游) 남자친구들의 얼굴을 섞어 도플갱어를 만들었다'고 표현한다 .
이미 웨이보(微博)나 샤오홍수(小红书) 등에서는 "왜 자꾸 '연여심공(恋与深空)'을 베끼는 거냐"는 비판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AI 드라마가 핵심 유저들의 본격적인 주목을 받지 못해 큰 반발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
을유(乙游) 핵심 유저들은 조직력과 목소리 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만약 이들이 AI 드라마의 '표절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AI 콘텐츠의 확산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 지점이 AI 드라마의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다. AI는 '가성비 좋은 대체재(平替)'를 만드는 데 능숙하지만, 여성향 핵심 유저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바로 이 '가성비 좋은 대체재' 라는 점이다 . AI 드라마 제작팀 입장에서는 '인기에 편승하는 전략(蹭热度)'과 '역풍을 맞지 않도록 방어하는 전략(防反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생존 과제가 될 것이다.
결론은 '함께하는 시간'이 아닌 '특별한 사랑'의 승부
AI 드라마의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2026년 2월 기준, AI 시뮬레이션 휴먼(仿真人) 드라마는 신규 드라마의 61.1% 를 차지하며 시장의 주력으로 부상했다 .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여성향 장르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향 게임은 몰락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게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은 달라져야 한다.
여성들의 감정적 소비 상품에 대한 요구는 본질적으로 개인화되고 세분화된다. 과거에는 여성 타겟 상품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에 '슈퍼 대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게임사들이 직면한 경쟁은 업계 내부를 넘어 AI 드라마, 숏폼 콘텐츠, 오프라인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확대됐다 .
성공 사례도 존재한다. '이섬량지명(以闪亮之名)'은 '언제 어디서나 옷을 코디하고 싶은' 유저층을 확실히 붙잡아 두며 선전하고 있다. 매일 접속해도 5분이면 할 일이 끝날 정도로 콘텐츠가 부족하지만, '극강의 그래픽'과 '코디네이트(换装)'라는 장르에 집중한 전략이 통한 것이다. 지난 3월, 이 게임은 3주년 업데이트 당일 매출이 1년 내 최고치를 경신하며 중국 본토 인기 차트 TOP10에 진입했다 .
결국 여성의 감정적 소비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나를 소중히 여김(被重视)', '참여할 수 있음(能参与)', '나만의 특별함(有专属)' 이라는 깊은 차원의 만족감이다. 이것이 바로 일방향적인 콘텐츠 상품인 AI 드라마와 게임을 구분 짓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다.
AI 드라마는 '함께하는 시간(陪伴)' 을 제공할 수 있지만, '특별한 사랑(偏爱)' 을 주기는 어렵다. 게임은 여전히 유저의 선택에 따라 캐릭터가 반응하고, 유저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상호작용'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648위안(약 13만 원)을 내고 뽑은 '나만의 남자친구'와, 5만 위안(약 1,000만 원)으로 대량 생산된 '모두의 남자친구' 사이에서, 유저들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리고 이 고민의 결과가 향후 중국 여성향 콘텐츠 시장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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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