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의 폐위된 왕 단종과 영월의 촌장 엄흥도를 통해 ‘권력을 잃은 이후의 리더십’을 묻는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궁중 권력 다툼의 긴장감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인물이 인간으로서 어떤 태도를 선택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단종은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명령을 내릴 권한도, 충성을 요구할 지위도 사라졌다. 그러나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리더십의 본질을 드러낸다. 직책과 권위가 제거된 자리에서도 영향력은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리더십을 직급, 권한, 통제력과 동일시하지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엄흥도라는 인물로 확장된다. 그는 정치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이 아니다. 변방의 삶을 살아가는 한 지역의 촌장이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선택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왕이라는 신분이 아니라 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 공동체의 시선을 감수하면서도 책임을 감당하는 용기는 지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서 비롯된다.
이 장면은 현대 조직의 리더십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직책이 있을 때는 리더처럼 행동하지만, 직책이 위태로워지거나 권한이 제한될 때는 쉽게 영향력을 잃는다. 그러나 진짜 리더십은 권한이 충분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제한된 상황에서 드러난다.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도 관계를 선택하고 책임을 감당하는 태도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
조직 안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존재한다. 구조조정, 실패, 갈등, 혹은 역할의 변화 속에서 직위는 흔들릴 수 있다. 그때 리더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지위를 지키는 데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지키는 선택을 할 것인가. 전자는 단기적 안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후자는 공동체의 신뢰를 만든다.
단종은 왕이었을 때보다 왕이 아니었을 때 더 많은 인간적 공감을 얻는다. 엄흥도 역시 공식적 권위를 넘어선 선택을 통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책임을 감당했기 때문에 영향력을 남겼다는 점이다. 리더십은 지위의 크기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위기의 순간 어떤 기준으로 행동했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조직에서 종종 묻는다. “리더십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전략, 의사결정 기법, 성과 관리 방법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권한이 약해졌을 때도 신뢰를 선택할 수 있는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관계를 지킬 수 있는가. 공동체의 시선을 감수하면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리더십은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태도라는 것. 직책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서 남긴 신뢰는 오래 지속된다.
이제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행사하고 있는 영향력은 직책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신뢰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리고 만약 내일 당신의 직위가 사라진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을 따를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리더십은 권력이 유지될 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사라질 때 드러난다.
[ 필자 소개 ]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교육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과 리더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리더십 전문가입니다.
LG전자와 SKT에서 사내 강사로 활동했으며, 개인·조직 코칭을 통해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촉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