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공급망에 미친 영향
세계 경제는 팬데믹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으며,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성입니다. 이 전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여러 국가들이 자국 산업의 자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보호주의적 정책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의료물품과 주요 자원의 국내 생산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는 전세계적으로 경제 구조 변화를 촉발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2026년 2월 18일, 주요 글로벌 매체들이 상반된 시각을 제시하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즈는 같은 날 각각 정반대의 관점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문제를 다루며, 이 시대가 직면한 근본적인 딜레마를 조명했습니다.
상호의존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 워싱턴포스트 글로벌 오피니언에 게재된 Dr.
Emily Zhao의 칼럼 '탈세계화의 환상: 상호 의존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은 현재의 보호주의 경향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합니다. Zhao 박사는 "국가 안보와 경제적 자립을 명분으로 한 과도한 보호주의가 오히려 글로벌 경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기술과 자원의 상호 의존성은 현대 경제 시스템에서 불가피한 현실이며, 이를 무시한 채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결국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팬데믹 초기에 발생한 마스크와 의료 장비의 공급 부족은 많은 국가들에게 경각심을 주었지만, 이에 대한 해법이 무조건적인 자국 생산 확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Zhao 박사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은 국가들이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여 협력할 수 있도록 해왔다"며, "각국이 특정 산업에 특성화되어 이룬 혁신이 지금까지의 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보호주의의 부상이 이러한 흐름을 방해하여 기업들의 혁신을 제한하고 다양한 시장에서의 경쟁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그는 협력을 통한 안정적인 다자주의 공급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중도진보적 관점에서 상호 의존성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할 것을 제안합니다. 단순히 국내 산업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상호 보완적인 경제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생존 전략으로서의 공급망 재편 반면, 같은 날 파이낸셜타임즈 오피니언에 게재된 Patrick Jenkins의 칼럼 '국가 안보 시대: 공급망 재편은 새로운 경제 전략'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Jenkins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핵심 산업의 자국 내 생산 및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은 단순한 보호주의를 넘어선 국가 생존 전략"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과거의 효율성 중심 논리가 현 시대의 위협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적하며, 탄력성과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효율성만을 추구한 글로벌 공급망은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 앞에서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는 것이 그의 핵심 논지입니다. Jenkins는 지정학적 긴장과 무역 전쟁이 증가함에 따라 각국이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여 자원의 안전성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봅니다.
국가 경제의 안보는 점점 더 많은 정부의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이는 필수 산업의 국내 생산을 정당화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히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과 같은 전략 산업에서의 자립이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닌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합니다.
과거 수십 년간 추구해온 비용 효율성 중심의 아웃소싱 전략이 이제는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취약점이 되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한국이 직면한 딜레마
보호주의 대 효율성
이러한 상반된 시각 사이에서 한국은 특히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분야는 모두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고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우,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핵심 장비와 소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사태는 이러한 의존성이 얼마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수조 원을 투자했지만, 완전한 자립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입니다. 자동차 산업 역시 비슷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배터리 공급망의 안정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습니다. 한국의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시장에서 30%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 원자재인 리튬, 코발트, 니켈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이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큰 타격이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새로운 산업 정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보호주의로 갈 경우, 국내 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GDP 대비 70%를 상회하며, 이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으로부터의 완전한 탈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경제적 손실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균형잡힌 접근의 필요성 전문가들은 한국이 Zhao 박사와 Jenkins가 제시한 두 관점의 장점을 선택적으로 결합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즉, 핵심 전략 산업에서는 일정 수준의 자립도를 확보하되,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선택적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장비, 배터리 핵심 소재, 의약품 원료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분야에서는 국내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등 우호국들과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는 이중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자립도, 무제한적인 글로벌화도 아닌, 실용적인 중도 노선입니다. 한국 정부는 최근 '공급망 안정화 특별법'을 통해 핵심 전략 기술 및 품목을 지정하고, 이에 대한 국내 생산 능력 확충과 해외 공급처 다변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관련 예산으로 4조 원 이상을 책정했으며, 2026년에는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과 혁신의 역할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또 다른 요소는 중소기업의 역할입니다.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에서 하청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고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의 공급망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중소기업 스스로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독립적인 플레이어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벤처 생태계 역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바이오, 신소재 등 미래 전략 산업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새로운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혁신 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해야 합니다. 국제 협력의 새로운 프레임워크
한국 산업에의 시사점
워싱턴포스트의 Zhao 박사가 강조한 것처럼, 완전한 탈세계화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즈의 Jenkins가 지적한 것처럼, 무조건적인 효율성 추구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안보와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한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 프레임워크입니다.
최근 미국이 주도하는 '칩4(Chip4)' 동맹이나, 유럽연합의 '전략적 자율성' 정책은 이러한 새로운 접근의 예시입니다. 이들은 완전한 개방도, 완전한 폐쇄도 아닌,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과의 선택적 협력'을 추구합니다.
한국은 이러한 다양한 협력 프레임워크에 전략적으로 참여하면서, 동시에 한국 주도의 공급망 협력 이니셔티브도 발전시켜야 합니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은 한국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은 제조업 기반이 강화되고 있으며,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주요 대상국입니다. 한국은 이들 국가와의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여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
앞으로 몇 년 동안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과정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중 갈등의 장기화,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망 불안정성 증가,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공급망 지형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면밀히 주시하며, 상황에 맞는 유연한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2026년은 이러한 전략의 방향을 확정하는 중요한 시점이 될 것입니다. 보호주의와 효율성, 안보와 개방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한국 경제의 향후 10년을 결정짓는 핵심 과제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Zhao 박사와 Jenkins가 제시한 두 관점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과 산업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일부 전략 산업에서는 Jenkins의 주장처럼 안보와 탄력성을 우선시하되,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Zhao 박사가 강조한 협력과 효율성의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에 대해 단기적 대응과 장기적 전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당장의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구조적 개혁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불가능하며, 기업, 학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지혜로운 선택을 위하여 워싱턴포스트와 파이낸셜타임즈가 제시한 상반된 관점은 단순히 학술적 논쟁이 아닙니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직면한 실존적 딜레마이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어느 한쪽을 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관점의 장점을 현명하게 결합하는 데 있습니다. 효율성과 안보, 개방성과 자립, 협력과 자주성 사이에서 한국만의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쉬운 과제가 아니지만,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축적한 경험과 지혜가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도전입니다. 독자들도 이 문제를 단순히 정책 결정자들의 과제로만 여기지 말고, 자신의 일상생활과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로 인식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의약품 하나하나가 모두 글로벌 공급망의 산물이며, 이 공급망이 어떻게 재편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과 경제적 안정성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논의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박지영 기자
[참고자료]
https://www.washingtonpost.com/opinions/2026/02/18/global-supply-chain-deglobalization-interdependence.html
https://www.ft.com/content/2026/02/18/supply-chain-reshoring-national-security.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