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예천의 한 아파트. 겉보기에는 평온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는 노년 부부의 일상이 조용히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평생 신앙생활을 이어오며 성실하게 살아온 남편과 허리 수술 이후 안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아내. 자녀들은 생업으로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부모 곁을 자주 지키지 못한다. 집 안에는 두 사람의 침묵만이 남아 있다.
최근 이 가정에 방문요양보호사가 투입됐다. 외부의 도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손길은 1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겉으로 드러난 질투와 비용 부담 문제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훨씬 복합적인 심리가 얽혀 있다.
아내는 요양보호사가 방문할 때마다 “저 사람은 평생 돈 한 번 벌어보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단순한 핀잔처럼 들리지만, 이는 노년기 경제 불안이 만들어낸 방어적 언어다. 오랜 세월 가계를 책임졌던 세대에게 ‘지출’은 곧 생존의 문제다. 특히 질병으로 인해 돌봄이 필요해질수록, 비용은 곧 통제력 상실로 인식되기 쉽다.
여기에 초기 치매 증상 중 하나인 피해망상이나 부정 망상이 더해지면 상황은 급속히 악화된다. 배우자와 요양보호사의 일상적 대화조차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돌봄 현장은 회복의 공간이 아닌 감정 충돌의 현장으로 바뀐다.
자녀들 또한 혼란 속에 있다. 어머니의 변화를 이상 징후로 의심하면서도, 이를 질병으로 단정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선다. 동시에 부모를 곁에서 지키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더해진다. “아버지가 돈을 남겼느냐”는 질문이 오가는 순간, 이 가족의 신뢰 자산이 얼마나 소진됐는지 드러난다.
결국 요양보호사는 떠났고, 딸이 잠시 아버지를 모셨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이다. 정작 돌봄이 절실한 가정이 심리적 문턱을 넘지 못해 스스로 고립되는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서비스 매칭 실패로 볼 수 없다. 위기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보호자에 대한 심리 개입이 선행돼야 한다. 공격성과 의심이 성격 문제가 아니라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 전문 치매 선별 검사와 의료적 상담은 갈등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둘째, 비용 불안을 구체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실제 부담을 얼마나 경감하는지 반복적이고 명확한 안내가 필요하다. 돌봄 비용은 낭비가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 필수 지출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셋째, 부부 단위로 접근하는 서비스 설계가 필요하다. 한 사람만 지원받을 때 생기는 소외감을 줄이기 위해 배우자 참여형 프로그램이나 공동 활동 지원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돌봄은 개인 대상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돌봄은 신체 지원을 넘어선다. 식사를 준비하고 몸을 씻기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얽힌 감정을 풀어내고 닫힌 마음을 여는 작업이어야 한다. 노년의 고립은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단절에서 비롯된다.
지역사회와 정책이 이 심리적 고립에 더 깊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예천의 이 부부와 같은 가정은 계속해서 문을 닫을 것이다. 돌봄의 봄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이해와 개입, 그리고 신뢰 회복을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