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흐르는 건축물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남긴 이 문장은 지난 200여 년간 음악이라는 예술의 정의를 굳건히 지탱해 왔다. 건축가가 건물을 지을 때 뼈대를 세우고 벽돌을 쌓아 올리듯, 작곡가는 멜로디라는 골조 위에 화성을 쌓고 리듬이라는 마감재로 견고함을 더해야 했다. 그 과정은 창작자의 고뇌와 인내를 요구하는, 철저한 ‘시간의 예술’이었다.

‘건축’에서 ‘생성’으로, 모차르트 AI의 등장
하지만 2026년 2월, 이 오랜 정의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Mozart AI(모차르트 AI)’가 600만 달러(한화 약 83억 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하며 공개한 플랫폼은 음악을 ‘건축’이 아닌 ‘생성’의 영역으로 옮겨 놓았다.
이 새로운 플랫폼의 효율성은 실로 놀랍다. 사용자가 텍스트 창에 "비 오는 날의 우울한 로파이(Lo-fi) 재즈, 템포 80, 색소폰 솔로 추가"라고 입력하면, 불과 몇 분 만에 완성된 곡이 탄생한다. 단순히 오디오 파일 하나를 뱉어내는 수준이 아니다. 미디(MIDI) 데이터를 직접 수정하고 보컬을 입히는 것은 물론,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까지 '원스톱'으로 만들어낸다.
1,000만 스트리밍의 유혹과 불편한 진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베타 서비스 출시 2개월 만에 10만 명의 사용자가 몰려들었고, 이들이 만들어낸 곡은 100만 개를 넘어섰다. 심지어 AI가 생성한 일부 곡들은 스포티파이(Spotify)와 같은 거대 플랫폼에서 1,000만 스트리밍을 돌파하며 인간 아티스트들의 차트를 위협하고 있다. 바야흐로 ‘1분 작곡’ 시대의 개막이다. 그러나 이 눈부신 기술적 효율성 뒤에는 우리가 미처 직시하지 못한, 혹은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
진실 1: 서사가 소거된 ‘청각적 자극’
첫 번째 진실은 ‘과정이 삭제된 결과의 공허함’이다. 우리가 음악에서 느끼는 감동의 원천은 단순히 주파수의 수학적 조합이 아니다. 청력 상실의 절망 속에서 교향곡을 써 내려간 베토벤의 처절함, 통기타 하나로 삶의 무게를 노래하던 김광석의 진정성처럼, 청중은 결과물 이면에 담긴 창작자의 서사와 고뇌에 공명한다. 그러나 Mozart AI가 쏟아내는 수많은 곡에는 서사가 부재한다.
오직 데이터의 확률적 조합만이 존재할 뿐이다. 2026년 현재 디저(Deezer)와 같은 플랫폼에는 매일 5만 곡 이상의 AI 트랙이 업로드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이것을 ‘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정교하게 설계된 ‘청각적 자극(Auditory Stimulus)’이라 불러야 할까.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은 소비될 수는 있어도 진정으로 향유되기는 어렵다.
진실 2: 저작권의 ‘검은 상자’와 스타일의 도용
두 번째 진실은 ‘저작권의 검은 상자’다. Mozart AI 측은 합법적으로 해결된 데이터셋을 사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반쪽짜리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AI 모델이 특정 장르의 스타일, 즉 뉘앙스와 분위기(Vibe)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무명 아티스트들의 노력이 재료로 쓰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구체적인 멜로디가 아닌 ‘스타일’은 저작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누구나 "비틀즈 스타일로 만들어줘"라고 요구할 수 있고, AI는 그들의 영혼을 흉내 낸 곡을 출력한다.
그렇다면 1,000만 번 재생된 그 노래의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일까, AI 개발사일까, 아니면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을 학습 당한 원작자들일까.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논의 중인 ‘AI 음악 투명성 법안’조차 이 복잡한 실타래를 완전히 풀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실 3: ‘실패할 자유’가 없는 평균의 예술
세 번째 진실은 ‘창작의 획일화’ 우려다.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슬로건은 매력적인 민주화의 약속처럼 들린다. 실제로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이들에게 Mozart AI는 꿈의 도구다. 하지만 이 도구가 보편화될수록 음악은 역설적으로 획일화될 위험이 크다.
AI는 기본적으로 학습된 데이터의 ‘평균값’을 지향한다. 대중에게 가장 듣기 좋고 실패하지 않을 패턴을 추천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AI의 추천 알고리즘을 따라 곡을 만들 때, 불협화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험 정신이나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파격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우리는 ‘실패할 자유’를 잃어버린 채, 알고리즘이 보장하는 ‘성공한 패턴’의 음악들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패스트 뮤직’의 시대, 인간의 가치는 ‘비효율’에 있다
물론 Mozart AI가 만들어낸 하루 5만 개의 트랙들이 모두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1. 꽉 막힌 퇴근길의 차 안에서, 혹은 집중력이 필요한 도서관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베토벤의 고뇌가 아니라 적당히 세련되고 매끄러운 ‘배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AI는 음악을 ‘예술’이라는 무거운 옥좌에서 끌어내려, 언제든 소비 가능한 실용적인 ‘도구’로 되돌려 놓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음악 시장은 명확히 갈라질 것이다. 빠르고 저렴하게 소비되는 ‘패스트 뮤직(Fast Music)’의 영역은 AI가 지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예술가는 어디에 서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답은 ‘비효율’에 있다.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무대 위에서의 땀방울, 팬들과 눈을 맞추며 공유하는 서사, 그리고 실패할지언정 평균값을 거부하는 파격. 바로 그 비효율적인 순간들이야말로 인간이 빚어낼 수 있는 유일한 ‘프리미엄’이다.
거리에 AI의 노래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진짜 인간의 목소리를 더욱 갈망하게 될 것이다. 기계는 ‘소리’를 채우고, 인간은 그 소리 사이의 ‘여백’과 ‘의미’를 채우는 세상. 그것이 모차르트 AI와 공존해야 할 우리의 2026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