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법적 책임이 바꾸는 원가 구조
2026년 6월, 런던의 호텔과 고급 주거를 수십 년 쌓아 올린 아드모어 그룹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한 기업의 몰락으로 보기에는 파장이 크다. 9개 프로젝트, 약 5억 파운드 규모의 공사가 멈출 위기에 놓였고, 건물 안전을 둘러싼 법적 책임 판결이 직접 뇌관으로 작동했다.
결론은 분명하다. 규제와 법적 책임이 원가 구조를 재편하는 순간, 현금흐름이 얇은 건설 모델은 버티지 못한다.
이 경고는 영국의 일이면서 동시에 한국 건설에도 유효하다. 무엇이 기업을 무너뜨렸는지 짚어보면 현재 산업의 균열이 드러난다.
아드모어 그룹은 1974년 아일랜드 형제가 설립한 이후 런던의 래플즈 호텔과 더 네드(The Ned) 같은 대표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력과 신뢰를 쌓았다고 평가받아 왔다. 배럿 레드브로, 버클리 등 주요 주택 건설사와도 협력하며 52년간 사업을 이어온 회사다.
그러나 애드미럴티 쿼터(Admiralty Quarter)와 관련된 '건물 책임 명령(Building Liability Order, BLO)' 판결이 나온 뒤, 발주처 신뢰가 약해지고 진행 중인 여러 프로젝트의 지불 조건과 가치평가가 불리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회사는 파산을 알리면서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남은 사업 가치를 보존하고 BLO 판결에 대한 항소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일련의 경로는 건물 안전 규제가 시장의 위험과 원가에 어떻게 깊이 연결되는지, 그리고 법적 책임의 불확실성이 곧바로 자금흐름 악화로 번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첫째 근거는 법·규제 리스크의 실물화다. BLO는 특정 건물 결함에 대해 광범위한 이해관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영국은 2017년 그랜펠 타워 화재 이후 2022년 건물안전법(Building Safety Act)을 제정하며 시공사의 책임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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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는 그 핵심 수단 중 하나로, 기업 간 법인격을 초월해 모기업이나 관련 법인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아드모어가 맞닥뜨린 판결 이후 거래 상대방의 지불 조건이 악화했고, 프로젝트 가치가 낮게 평가되었다는 점은 규제 강화가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신용·평판과 계약 조건을 일시에 역전시킨 사례다.
크레스트 니콜슨(Crest Nicholson)은 아드모어를 상대로 약 1,500만 파운드를 받기로 판결받았다. 선례가 생기면 소송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규제가 안전과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임은 분명하지만, 그 충격을 흡수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흡수 능력이 있는지 따져야 한다. 하도급·재하도급으로 얇게 분산된 책임 구조에서는 최종 시공사가 회계상 마지막 방파제가 되기 쉽다.
둘째 근거는 산업 전반의 수치다. 회계·자문사 RSM UK는 "2026년 2월까지 12개월 동안 건설업 파산은 3,851건으로 전체의 17%였다"라고 집계했다. 건설이 다른 업종 대비 파산 비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단품의 악재가 아니라 구조적 압력이 중첩되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에너지와 자재 가격이 치솟았고, 조달금리는 높아졌다. 인력은 부족했고, 공기 지연은 늘어났다. 원가의 불확실성이 커진 채로 고정가 계약을 체결한 기업일수록 손실이 쌓였다.
아드모어가 2024년 9월까지 세전 손실 4,260만 파운드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누적 손실의 전형적 단면이다. 셋째 근거는 현금흐름과 계약 구조다. 영국 현장에서는 계약업체의 부실이 이어지면서 연결고리가 끊겼다.
하도급 업체가 쓰러지면 원청이 대체 업체를 찾는 동안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들어가고, 이미 얇아진 마진은 더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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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밀리면 금융비용이 불어난다. Construction Enquirer에 따르면 아드모어의 중단 위기 프로젝트는 9건, 약 5억 파운드 규모다.
단일 기업의 현금흐름을 넘어 공급망 전체의 자금 사슬이 흔들렸다는 방증이다. 이 구조에서 이자율 몇 퍼센트포인트의 변화, 안전 관련 보수공사 지시, 발주처의 대금 보류 같은 작은 변수도 치명적 결과를 만든다.
수익성은 수주 순간이 아니라 인허가, 설계 변경, 자재 조달, 금융 약정의 전 과정에서 서서히 훼손된다.
금리와 자금조달, ‘좋은 수주’의 기준
넷째 근거는 신뢰의 역학이다. 안전 관련 판결과 손해배상 선례가 나오면 발주처는 보수적으로 변하고, 금융기관은 담보와 계약 보증을 더 엄격히 본다. 같은 프로젝트라도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으면 자금조달 조건이 바뀐다.
값비싼 자본은 프로젝트를 '이익'에서 '손실'로 이동시킨다. Express.co.uk와 Construction Enquirer의 보도에서 드러난 대로, 영국 시장이 거래 자체로만 보면 여전히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사들은 보수적으로 움직였다.
이는 수요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조달-규제의 삼각관계가 사업의 타당성 계산식을 바꾸었음을 뜻한다. 이쯤에서 나올 반론이 있다.
영국은 그랜펠 타워 이후 안전 규제가 대폭 강화되었고, BLO 같은 제도가 있어 특수하다는 주장이다. 한국에 그대로 대입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반론의 전제에는 일리가 있다. 제도 환경은 다르고, 사법부의 집행 강도와 속도, 보험시장의 관행도 차이가 크다. 그러나 핵심은 다르지 않다.
안전과 품질에 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국면에서 법적 책임의 범위는 넓어지고 비용의 인식 시점은 앞당겨진다. 제도의 명칭이 달라도, 시공사가 최종 책임의 교차점이 된다는 구조는 유사하다. 결국 변수는 제도가 아니라 준비 수준이다.
계약에서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했는지, 패스스루(pass-through) 조항으로 원가 변동을 공유하도록 설계했는지, 현금흐름 쿠션을 확보했는지, 품질과 안전 리스크를 조기 점검했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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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에게 이 사건이 주는 실질적 메시지는 세 가지다. 첫째, 안전 규제 강화는 비용 항목이 아니라 자본조달 조건 그 자체를 바꾸는 요인이다.
국내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과 품질 기준이 높아지는 흐름이 이어졌고, 중대한 사고에는 형사적·재정적 책임이 커졌다. 규제 준수는 법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의 언어로 번역해야 작동한다.
둘째, 고정가 수주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 자재·에너지 가격 변동성이 잔존하는 한, 설계 변경과 공기 지연을 고려한 조정 메커니즘 없이 받는 고정가 수주는 손실계약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셋째, 공급망의 체력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원청의 재무지표만으로는 프로젝트 리스크를 설명할 수 없다. 하도급의 연쇄 부실을 막는 지급보증, 공정관리, 품질 데이터의 투명화가 함께 가야 한다. 정책·금리·공급의 구조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번 파산은 특정 시점의 가격 조정과 무관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금리가 높은 구간에서는 동일한 프로젝트라도 레버리지 구조가 버거워지고, 금융기관의 심사는 보수적으로 변한다. 정책은 안전과 공공성 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공급은 인허가 절차와 규정 준수 비용 상승으로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이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하면, 표면적 거래 지표와 달리 사업성은 급격히 낮아진다. RSM UK가 집계한 영국의 수치, 12개월 3,851건의 건설 파산(전체 산업 파산의 17%)은 이러한 삼중 압력의 결과로 해석하는 편이 정확하다. 단기 반등 신호에 흔들릴 때가 아니라, 자본비용과 규제 비용을 구조적으로 재평가할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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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건설의 연쇄리스크 점검법
법원의 선례가 산업을 재편하는 속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LO 판결과 크레스트 니콜슨의 1,500만 파운드 승소는 소송 리스크가 회계에 반영되는 타이밍을 앞당겼다.
선례가 늘수록 보험료와 자기부담금, 준비금 설정은 상향 조정된다. 이는 조달금리 상승과 겹쳐 자본의 총비용을 끌어올린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수익성 모델로는 '좋은 수주'의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
계약서의 단어 하나, 책임의 범위 문장 하나가 수익과 손실을 가른다. 안전, 품질, 거버넌스를 단순 구호가 아닌 재무 지표로 내재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번 사례에서 확인된다. 아드모어의 사례를 한국 시장에 기계적으로 투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반대 극단, 즉 '우리와 상관없다'는 안이함이야말로 위험하다. 해외 프로젝트, 원자재 조달, 금융시장 변동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대형 현장의 자금 유동성이 흔들릴 경우, 하도급 기업의 연쇄 부실은 한국에서도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수요 사이클이 회복되어도, 계약과 규제, 자본비용의 역학이 같지 않으면 수익 사이클은 따라오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을 잇는 관건은 계약과 자금, 그리고 데이터다.
공정률·품질·안전지표를 표준화하고 금융과 공유하는 체계가 갖춰질수록, 규제 충격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 자산으로 전환된다. 필자는 이번 사건에서 한 가지 교훈을 분명히 본다.
강한 기업은 가격 상승기에 선점한 것이 아니라, 규제와 금리의 역풍 속에서 계약·공정·현금을 통제한 기업이다. 아드모어의 파산은 영국만의 특수사가 아니다. 안전 규제 강화와 법적 책임 확대, 에너지·자재의 구조적 변동성, 그리고 보수화된 자본이 맞물릴 때 어떤 사업 모델이 생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건설이 지금 점검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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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체결하는 다음 계약 한 건이, 금리와 규제, 원가 변동을 견딜 만큼 두껍게 설계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문장을 고치고 어떤 데이터를 축적할 것인가.
FAQ
Q. 일반 투자자나 수분양자는 영국 사례에서 무엇을 점검해야 하나?
A. 시공·시행사의 재무지표뿐 아니라 계약 구조를 함께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고정가 비중, 품질·안전 관련 보수 의무, 원가 변동 시 조정 조항의 존재 여부가 위험도를 좌우한다. 공사 지연이나 설계 변경이 발생할 때 자금조달 계획이 유지될 수 있는지, 보증과 보험의 범위가 충분한지도 살펴야 한다. 분양사업의 경우 에스크로 관리와 공정률 연동 대금 지급 구조가 견고할수록 리스크가 낮아진다.
Q. 중소 하도급 업체는 어떤 대비가 현실적인가?
A. 원가 변동을 전가받지 않도록 단가 재협상 트리거와 지급기한 조항을 계약서에 명확히 두는 것이 우선이다. 품질·안전 관련 문서화와 데이터 축적을 강화하면, 분쟁 시 방어와 보험료 절감에 유리하다. 원청의 재무·현금흐름 상태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금 지급보증서와 지급정지 시 대체조달 절차를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금융기관과의 거래선을 다변화해 단기 운전자금의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Q. 발주처와 금융기관은 무엇을 요구해야 효과적인가?
A. 설계 확정도와 조달 계획의 현실성을 점검하는 사전심의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공정률·품질·안전 데이터를 표준 포맷으로 제출하도록 요구하면, 리스크 조기 경보가 가능해진다. BLO와 유사한 책임 확대의 흐름을 감안해 하자보수 준비금과 보험 범위를 상향 조정하고, 원가 변동 패스스루 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우대하는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가격 결정에도 직접 반영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