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한 잔의 술은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 풍경이다. 회식 문화, 인간관계의 윤활유,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특히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다”는 말은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발표에서 “알코올 소비에는 안전한 수준이 없다”고 밝혔다. 여러 역학 연구는 음주가 장기적으로 인지 저하와 치매 위험 증가와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대표적 퇴행성 치매인 알츠하이머병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뇌세포의 점진적 손상과 사멸로 발생한다. 문제는 이 손상을 가속화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알코올이 지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적당한 음주’라는 표현은 과연 과학적으로 타당한가.

하루 한 잔의 함정 — 뇌세포에 남는 작은 흔적들
알코올은 혈액을 통해 뇌로 빠르게 이동한다.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특성 때문에 일시적 이완과 기분 상승을 유도하지만, 반복 노출될 경우 신경세포 간 연결망에 변화를 일으킨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수만 명의 뇌 MRI 데이터를 분석해 음주량이 증가할수록 회백질 부피가 감소하는 경향을 확인했다. 특히 전두엽과 해마 부위의 위축이 관찰됐다. 해마는 기억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소량 음주도 누적될 경우 염증 반응과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보고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당장 증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장기간 축적되면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취하지 않을 정도’의 음주는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뇌는 취기와 무관하게 미세한 구조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적당한 음주가 치매를 늦춘다? 왜곡된 통계의 그림자
한때 일부 연구는 소량 음주자가 비음주자보다 치매 발병률이 낮다고 보고했다. 이 결과는 “와인 한 잔은 건강에 좋다”는 메시지로 확대 재생산됐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 통계가 선택 편향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비음주자 집단에는 기존 질환으로 인해 술을 끊은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으며, 건강 상태가 이미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소량 음주 집단이 상대적으로 건강해 보이는 착시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연구에서는 음주 빈도와 인지 기능 저하 사이에 선형적 관계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음주량이 증가할수록 인지 점수가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다.
‘적당한 음주가 건강하다’는 명제는 단순화된 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메타분석들은 “위험이 없다는 근거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MRI가 보여준 경고 — 중년 이후의 변화
중년은 치매 예방의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이 시기의 생활 습관이 노년기 인지 건강을 좌우한다.
MRI 기반 연구들은 40~60대 성인에서도 음주량과 뇌 위축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특히 매일 음주하는 집단에서 뇌 백질 손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백질은 뇌 부위 간 신호 전달을 담당한다.
프랑스 장기 코호트 연구는 과도한 음주가 조기 치매 발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과음은 뇌혈관 손상을 동반하며 혈관성 치매 위험도 높인다.
즉, 치매는 갑자기 찾아오는 병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생활 습관의 결과일 수 있다.
안전한 음주량은 존재하는가 — 절주의 과학
세계보건기구는 알코올과 관련해 “완전히 안전한 수준은 없다”고 명시한다. 다만 각국은 현실적 기준으로 ‘저위험 음주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는 위험을 ‘0’으로 만드는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낮추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음주 빈도를 줄이고, 연속 음주를 피하며, 공복 음주를 삼가고, 음주 없는 날을 정기적으로 갖는 것을 권고한다. 특히 고혈압, 당뇨, 가족력 등 치매 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 절주가 더욱 중요하다.
치매 예방 전략은 단일 요인이 아닌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규칙적 운동, 균형 잡힌 식단, 충분한 수면, 사회적 교류 유지 등이 보호 요인으로 꼽힌다. 알코올 섭취 감소 역시 그 축에 포함된다.
술은 문화이고 습관이며 관계의 매개다. 그러나 뇌 건강의 관점에서 보면, 그 대가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적당한 음주’라는 표현은 안심을 주지만, 과학은 점점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안전을 보장하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고가 이어진다.
치매는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의 선택이 10년 후 기억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한 잔을 줄이는 행동은 사소해 보이지만, 뇌 건강을 위한 장기적 투자일 수 있다.
안전한 음주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점점 명확해진다. 위험을 완전히 피하는 방법은 ‘덜 마시는 것’ 혹은 ‘마시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