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납의 굴레와 대출의 벽, 현실은 금융 문턱 높이는 ‘행정 완화’에 그친다

소상공인 세금 완화 제도 도입에도 대출 접근성·신용불이익은 여전…정책 설계의 사각지대는 그대로

 

 

국세청과 정부는 소상공인의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세금 ‘소멸’ 제도를 신설하고, 체납액 분할 납부와 납부 유예 요건을 확대하는 등 과거보다 한층 완화된 조치가 도입됐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체납액 일부가 소멸되고, 남은 원금은 최대 5년간 나눠 납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인 변화다.

 

 

제도만 놓고 보면 분명 파격적이다. 그러나 현장의 반응은 다르다. 매출은 줄었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세금 부담이 일부 완화되더라도 체납액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금융 접근성은 달라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반복된다.

 

독자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생긴다.
체납세금 소멸 제도가 생겼는데, 왜 대출은 여전히 어려운가.

답은 정책의 구조에 있다. 금융기관은 소상공인의 체납 기록 자체를 고위험 신호로 인식한다. 체납세금이 신용정보에 반영되는 순간, 은행권 대출은 사실상 막힌다. 일부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에서 담보를 전제로 한 대출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다수의 소상공인에게는 운영자금 마련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체납 완화 제도가 시행돼도 금융 접근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체납이 있는 경우 금융권 대출뿐 아니라 각종 정책 지원금과 정부·지자체 보조금 신청에서도 제한된다. 다수의 지원사업은 국세 또는 지방세 체납 여부를 기본 요건으로 확인하며, 체납 사실이 있는 경우 신청 단계나 심사 과정에서 배제된다. 세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체납 상태라는 이유만으로 정책 지원의 문턱에서 다시 걸러지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정책의 변화는 분명 존재한다. 2025년 정부 지원이 코로나 피해 보전과 저금리 대출 중심이었다면, 2026년에는 체납세금 소멸과 분할 납부, 신용정보 제공 유예 같은 제도가 추가됐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소상공인의 금융 접근성과 정책 지원 체계를 동시에 개선했는지에 대한 검증은 충분하지 않다.

 

현장에서 체감되는 현실은 여전히 냉정하다. 부가가치세 납부 기한 연장이나 세무조사 유예 같은 조치도 발표됐지만, 이는 체납 기록 자체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기록이 남아 있는 한 금융권의 문턱은 낮아지지 않고, 정책 지원 역시 접근이 제한된다.

 

문제의 핵심은 금융기관의 신용평가 체계와 정책 지원 요건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이다. 체납 정보가 완전히 삭제되지 않거나, 소멸 신청이 진행 중인 경우에도 해당 기록이 신용평가와 지원사업 심사에 반영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정책이 행정 절차를 완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금융·지원 메커니즘까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대료 지원이나 바우처 정책 역시 고정비 부담을 일부 덜어줄 수는 있지만, 체납세금으로 인한 신용 불이익과 정책 지원 제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체납 문제와 금융 접근성, 정책 지원은 여전히 분절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왜 ‘체납세금 소멸’이라는 파격적 조치가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재기 수단이 되지 못할까. 가장 큰 이유는 신용정보 등록과 지원 요건 구조에 있다. 체납 사실이 신용평가와 지원사업 심사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한, 대출과 지원금 모두에서 불이익은 불가피하다. 신용정보 제공 유예 제도가 도입됐다고 해도 적용 범위와 현장 반영 방식은 복잡하고, 체감 효과는 제한적이다.

 

결국 체납세금 소멸 제도는 행정적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에 머문다. 금융기관의 위험 평가 기준과 정책 지원 요건이 함께 바뀌지 않는 한, 많은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대출과 지원금의 벽 앞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이번 정책은 책상 위에서 설계된 제도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매일 가게 문을 열며 생존을 고민하는 소상공인의 현실과 정책 설계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체납 완화의 제도적 의미를 넘어, 금융 접근성과 정책 지원 구조를 함께 개선하지 않으면 정책의 효과는 반쪽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쓰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언제 쓰느냐”다. 정책은 현장을 중심으로 다시 설계돼야 하며,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효과성에 대한 검증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작성 2026.01.23 15:32 수정 2026.01.23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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