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상식여행] 이탈리아에서는 치즈를 맡기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준다고?

파르미지아노 한 덩어리가 담보가 되는 나라

유럽의 미식 강국 이탈리아에는 조금은 믿기 어려운 금융 관행이 존재한다. 현금을 담보로 맡기는 대신, ‘치즈’를 은행에 맡기고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는 실제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합법적이고 안정적인 금융 시스템이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치즈는 숙성 기간이 길다. 수년간 창고에서 잠자듯 익혀야 비로소 제값을 받는다. 문제는 그 시간 동안 생산자가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때 은행이 나선다. 아직 숙성 중인 치즈를 담보로 평가해 일정 금액을 대출해 주는 방식이다.

 

에밀리아로마냐 지역의 한 중소 치즈 생산업자는 수천 개의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숙성 창고에 보관한 채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치즈는 시간이 지나야 가치가 오르지만, 당장 직원 급여와 원유 대금이 문제였다. 

[사진: 창고에 보관 중인 치즈의 모습, 챗gpt] 

그는 은행에 숙성 중인 치즈 약 1만 개를 담보로 맡겼고, 은행은 치즈의 숙성도·품질·예상 시가를 평가한 뒤 수백만 유로의 대출을 실행했다. 덕분에 그는 숙성 기간을 버텼고, 이후 치즈를 정상 가격에 판매해 대출을 상환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일부 지방 은행들은 전용 치즈 보관 창고를 운영한다. 이곳에는 수십만 개의 치즈 휠이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은행 직원과 치즈 감정사는 정기적으로 치즈를 두드려 소리를 듣고, 외관과 숙성 상태를 점검한다. 

 

치즈는 도난과 화재에 대비해 보험까지 가입된다. 은행 입장에서는 부동산보다 관리가 까다롭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안정적인 담보다.

 

은행은 치즈의 수량과 품질, 숙성 단계까지 꼼꼼히 점검한다. 이후 전문 창고에 치즈를 보관하며, 도난과 변질을 막기 위해 엄격한 관리 체계를 적용한다. 치즈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자산’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도 위험이 낮다. 실제로 해당 대출은 연체율이 낮고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독특한 금융 모델은 농가를 살리고 지역 경제를 지탱해 왔다. 생산자는 숙성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고, 은행은 전통 산업을 기반으로 한 신뢰 가능한 담보를 얻는다. 무엇보다 ‘음식’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는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금융이 숫자와 알고리즘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했다면, 이탈리아의 치즈 은행은 전통과 신뢰가 어떻게 금융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다. 여행길에서 만난 한 조각의 치즈가, 알고 보면 은행 금고 속 자산일지도 모른다.

 

 

 

 

 

 

 

작성 2025.12.23 08:24 수정 2025.12.2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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