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예술치료학회가 11월 21일 국회박물관에서 추계학술대회를 열고, 근거기반 예술치료의 공공정신건강 체계 편입과 제도화를 제안했다. 언어로 감정을 전하기 어려운 취약군을 위한 비언어적 치료 접근을 확대하고, 국민이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모였다.
한국예술치료학회는 11월 21일 국회박물관에서 ‘근거기반 예술치료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주제로 2025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학회는 공공성 강화를 위한 법·제도 논의를 본격화하고, 국민의 정신건강 접근권을 넓히는 대안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번 논의의 핵심은 예술치료를 공공정신건강사업의 한 축으로 제도화해 대상자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이번 학회에서는 언어 표현이 쉽지 않은 집단에게 비언어적 치료가 가진 장점이 주목을 받았다. 자폐 스펙트럼 아동은 시각·청각 자극을 통한 자기표현에서 반응성이 나타나고, 말하기를 회피하는 청소년은 미술·음악·동작 활동에서 감정 개방이 촉진되는 사례가 보고됐으며, 치매 어르신의 경우 언어 기능 저하에도 미술 활동과 음악 자극이 정서 안정과 일상 적응에 도움을 준다는 임상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재난 현장에서 외상을 겪은 근무자들에게도 말로 옮기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을 예술 매체로 안전하게 표출하는 과정이 심리적 부담을 낮추는 보조적 수단이 된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이 같은 내용은 말 중심의 상담만으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감정·기억을 다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학회는 예술치료가 정서 조절과 기억 통합에 기여하는 ‘뇌기반 접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관련 수치와 효과는 연구 설계에 따라 차이가 있어 단정은 어렵지만, 트라우마 대상군에서 불안 지표가 낮아지고 우울 재발 위험이 감소했다는 국내외 보고가 축적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특정 집단·치료 설계·평가 도구에 따른 결과이므로 일반화에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으며, 제도 설계 시 과학적 근거 축적과 윤리적 가이드라인, 표준화된 평가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해외에서는 영국 NHS, 미국 NIH를 비롯해 병원·학교·교정시설·재난트라우마센터 등에서 예술치료를 공공 서비스로 활용하는 사례가 알려져 있는데, 학회는 이러한 운영 경험을 국내 여건에 맞게 참고하되, 연구 근거의 질 관리와 직역 체계 확립, 수가·재정 구조, 안전성·효과성 평가를 함께 설계해야 지속 가능성이 담보된다고 제시했다.
임나영 한국예술치료학회 회장은 “정부의 정신건강사업 확대는 환영할 일”이라며 “국민 각자가 처한 상황과 특성에 맞는 치료 방식을 선택하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다양성을 넓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동시에 예술치료 관련 대학·대학원의 모집률 감소로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 생태계가 약화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교육·연구·임상 연계 지원과 거버넌스 구축을 과제로 제시했다.
학술대회 기조강연은 중앙대 광명병원 서정석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과학적 근거 기반의 예술치료 메커니즘’을 주제로 예술적 자극과 뇌 반응의 연계를 설명했다. 서울시 서북병원 송은향 신경과 과장은 ‘치매 환자를 위한 비약물적 치료’를 통해 음악·미술의 활용 방안을 소개했고, 생태예술단체 에코오롯 정은혜 대표는 ‘연대의 미술과 미술치료’ 발표에서 공동체 회복의 관점을 제시했으며, 이어진 패널 토의에서는 마음 건강 패러다임을 말 중심에서 예술 기반으로 확장하는 과제, 재난 트라우마 대응에서의 다학제 연계, 법제화의 단계별 로드맵과 성과 평가 체계 등이 논의됐다.
행사는 김종민 국회의원실 주최로 진행됐으며 예술치료사, 상담·복지·교육 관계자, 대학·연구기관, 공공정신건강 유관기관 종사자 등 약 300명이 참석했다. 학회는 이번 논의를 통해 국회·정부·현장 간 정책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예술치료의 공공정신건강사업 참여 기반을 구축하며, 대국민 인식 제고와 관련 법안 논의를 촉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학회는 복지·교육·문화예술이 융합된 지원 모델을 통해 현장 수요를 반영하고, 치료 대상의 안전과 권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표준 운영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