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남서부 구이저우성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가 문을 열었다고 보도되었다. 이름은 화장협곡 대교. 높이는 625m, 길이는 2,890m, 주경간은 1,420m에 이른다. 프랑스 에펠탑의 두 배를 넘고, 서울 롯데월드타워보다 70m 더 높다. 협곡의 절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차량으로 건너는 데 단 2분이면 충분하다. 중국 정부는 개통식에서 이를 지구의 균열을 잇는 다리라 칭하며 건설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지 《더 타임즈》는 이를 다르게 보았다. 이 다리를 불안한 토대 위의 세계 최고 다리라고 묘사했다. 그 말 속에는 중국 지방경제의 불안정한 현실이 숨어 있다.
기록의 경쟁이 낳은 세계 최고 다리
구이저우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로, 지형적 제약 탓에 경제 발전이 더뎠던 지역이다. 이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지방정부는 다리·터널·고속철 건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그 결과 지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10개 중 절반이 구이저우에 있다. 화장협곡 대교는 그 상징적 절정이다. 다리 위에는 유리 엘리베이터, 전망 카페, 번지점프대가 들어설 예정으로, 관광 수입 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 뒤에는 심각한 재정 위기가 숨어 있다.

지방정부의 빚더미-성장 지표의 덫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투자=성장=승진’이라는 인식 구조 속에 있다. 단기간의 경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반복해 왔다. 문제는 빌려서 짓고, 떠넘기는 방식이 누적된 것이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부채(Shadow Debt)까지 포함하면 중국의 전체 부채는 GDP의 약 120%에 달한다는 추정이 나온다. 그럼에도 새로운 다리를 짓고 터널을 뚫는 이유는, 지방정부의 성적표를 가시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화장협곡 대교는 부채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펌프 프라이밍의 한계-돈이 말라버린 중국
시진핑 주석은 세금 감면으로 기업 활동을 살리고, 내수를 확대하려 하지만 그만큼 정부 수입은 줄었다. 중앙정부는 이미 재정 여력이 소진된 지방정부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 어렵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펌프 프라이밍 정책을 쓰기도 벅찬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일본식 장기 침체로 천천히 가라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다리가 인구 이탈을 이어주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리의 완공은 구이저우의 발전이 아니라 인구 유출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지역 주민들은 더 빠르고 쉽게 청두나 광저우 같은 대도시로 떠날 수 있다. 다리가 사람을 흩어지게 하는 통로가 된 셈이다. 결국 남는 것은 비어 있는 도시와 빚으로 남은 건설물,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거대한 철제의 자부심뿐이다.
중국은 여전히 반도체, 전기차, 인공지능 같은 첨단 산업에 미래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산업은 대도시에 집중되고,지방 경제에는 고용이나 파급 효과가 미미하다. 구이저우의 다리엔 관광객의 환호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라는 기술력의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그 아래로, 경제구조의 경고문과 빚더미를 안고 ‘불안의 강(江)’이 흐르고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화장협곡 대교는 현대 기술력이 만든 걸작이다. 그러나 그 높이만큼이나 중국 경제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다리는 협곡을 이어주었지만, 경제의 균열은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가장 높은 다리 위에서, 가장 낮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