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따가운 햇살이 온몸으로 뿌려지는 하루다.
햇살을 마주한채 서울의 낮거리를 배회해보자는 무모한 생각을 하게되었다.
달랑 카메라 가방을 메고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가끔은 국제 도시 서울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인터넷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어줍지 않은 영어 실력이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내 홈피의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버스로 서울 시청을 향한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가을의 물씬한 내음이 풍기며 이 시간에도 꽤 많은 인파가 이 곳을 찾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인듯한 이들도 단체로 제법 눈에 띈다.
이 가을의 향취를 느껴 보고자함은 동서양의 공통적인 감성인것을 알 수 가있다.
여러분도 한 번 쯤 이 고즈넉한 가을의 덕수궁을 만끽해 보심이 어떨지?
호젓하다고나 할까...뭐 그런 잔잔함이 흐르는 박물관 앞에 작은 연못이 꿰나 인상적이다..오래전에 만났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학창시절 첫 여인과 데이트하던 그곳 덕수궁 돌담길...그때의 추억이라도 떠올리려나 해서 천천히 걸어보던 그 길이다. 지금은 사진에서 보듯 경찰 차량과 경비가 주변을 덜 우아하게 만드는것 같아 아쉽다.
미 대사관이 이전해 와서 그런것이겠지만....영 어울리지 않는다. 사진 한 컷을 하자 주변 경비서있던 경찰 친구가 다가와서 미 대사관 사진 촬영은 안된다나?
예전 만큼 넓게 느껴지지않는다.
그 곳을 빠져나와 시장기를 채우려 남대문으로 향한다.
초저녁임에도 한 작은 식당앞에 줄지어선 인파들이 눈에 띄어 다가가보니 만두 찐빵을 사기 위해서란다. 무작정 줄에 몸을 의지한다.그리고는 한 박스들고 아이들을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해 줄을 서 기다리며 사보았던 만두 찐빵....아이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와야되겠다.
★역사
덕수궁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를 여러 채 합하여 ‘시어소’로 정하여 행궁[정릉동 행궁]으로 삼았던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궁궐의 모습을 갖춘 덕수궁은 인목대비 유폐와 인조반정을 겪으면서 규모가 축소되었고, 특히 인조가 즉위한 이후 즉조당과 석어당을 제외한 나머지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로써 덕수궁은 더 이상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의 기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후, 1897년 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을 선포한 후 황궁으로서의 규모와 격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 또한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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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그 추억의 돌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