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쯤이면 들판 어귀나 산자락 어디선가 수줍게 고개를 드는 꽃이 있다.
이름마저 가을의 시간표를 품은 꽃, 구절초이다. 음력 구월 구일이 되면 줄기에 아홉 마디가 생긴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처럼, 구절초는 계절의 깊숙한 곳까지 스스로를 벼르고 벼려 온 끝에 비로소 화사한 피어남을 맞이한다.
가을의 구절초를 보고 있으면 참 신비로운 색의 변화를 관찰하게 된다.
처음 피어나는 봉오리 시절에는 발그레한 연분홍빛을 띠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네지만, 가을 햇살을 듬뿍 머금고 만개할 때면 이내 깨끗하고 맑은 흰빛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마치 살면서 겪는 여러 흔적을 조용히 품어 안고 마침내 가장 투명하고 순수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삶의 순리와도 닮아 있다.
화려한 원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여름 꽃들과 달리, 구절초는 자극적이지 않은 은은함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코끝에 가만히 대어보는 그 깊은 향은 가을날의 쓸쓸함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는 여운을 남긴다. 찬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늦가을까지 홀로 들판을 지키며 피어나는 강인함 역시, 외유내강의 멋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일러주는 듯하다.
계절이 고요히 무르익어 가는 이 가을, 길가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구절초 한 송이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 맑게 우려낸 구절초 차 한 잔의 온기를 손에 쥐고, 스쳐 지나가는 가을의 순간을 한 모금 음미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