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감천/ 이은택 時論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그늘을 하나씩 확인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실수 하나 없고 결점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며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완벽한 자기관리, 흠잡을 데 없는 처신, 도덕적인 결백함. 그런 수식어들은 타인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먼지가 나지 않는 방을 떠올려 본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고, 창문마저 꽁꽁 닫아둔 밀실(密室)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 반면 사람이 숨 쉬고, 햇살이 들어오고, 온갖 계절이 오가는 공간에는 당연하게도 먼지가 날린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도전하다 실패하며, 때로는 이기적인 마음이나 오판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생리이기 때문이다.
결점이나 허물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어쩌면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거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겉으로는 티 없이 깨끗해 보일지 몰라도, 그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과도하게 검열하고 있을지 모른다. 단 한 점의 먼지도 허용하지 않는 삶은 정갈해 보이지만, 동시에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서리 같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받고 친밀함을 느끼는 순간은 상대의 완벽함에 압도될 때가 아니다. 오히려 나처럼 어설픈 구석을 발견했을 때, 조그만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며 쑥스러워할 때 우리는 깊은 연결감을 느낀다. 조금은 털털하게 먼지를 털어내며 "나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네" 하고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 그것이 삶을 덜 팍팍하게 만든다.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먼지가 좀 날려도 다정한 볕을 쬐며 기분 좋게 툭툭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완벽함이라는 차가운 껍데기보다는, 조금은 허술하더라도 체온이 느껴지는 사람의 냄새가 훨씬 가치 있게 다가온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개인의 삶에서는 약간의 허물과 여백이 온기가 되지만, 국가의 국정을 책임지는 고위 공직자 인선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이 문장의 무게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들은 고위 공직자에게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높은 도덕성과 청렴함을 요구한다. 국민의 세금을 다루고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인 만큼, 작은 비리나 도덕적 결함도 국가적 신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 청문회마다 등장하는 위장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은 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핑계와 ‘그래도 공직자는 깨끗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을 일으킨다.
하지만 현실의 인선 과정에서는 정반대의 역설이 발생하기도 한다.
첫째, ‘Zero 먼지’의 함정이다.
털어서 먼지가 전혀 안 나는 사람을 찾다 보면, 역설적으로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고 위험을 피하며 살아온 무색무취한 인물만 남게 되기도 한다. 치열한 현장에서 성과를 내며 과감한 결단을 내려본 인재는 그 과정에서 작고 큰 흠집이나 논란을 겪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도덕적 결백함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정책 추진력이나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놓치는 ‘적재적소(適材適所) 실패’의 문제가 생긴다.
둘째, 검증의 과잉과 인재 가뭄이다.
공직에 나서는 순간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까지 낱낱이 파헤쳐지는 과정에서, 능력 있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공직 참여 자체를 손사래 치며 거절하곤 한다.
결국 고위 공직자 인선의 핵심은 ‘먼지의 종류와 크기를 구분하는 눈’에 있다.
개인의 완벽성을 요구하는 대신, 국가와 사회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결정적 비리(권력형 비리, 뇌물, 공정성을 해치는 범죄)’와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인간적인 한계나 부주의’를 명확히 구분하는 합리적 기준이 필요하다.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는 무결점의 환상을 좇기보다는, 먼지가 묻었을 때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털어낼 줄 아는 양심, 그리고 그 먼지를 상쇄하고도 남을 압도적인 실력과 사명감을 갖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국정 관리의 성패를 가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