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와 인공지능이 넓힌 한국학 연구…조선 토지문서부터 『직지』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영문학술지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29권 1호 발간

조선 관료 생애·양안·근대 잡지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분석

데이터로 연결한 역사·문학·대중문화…한국학 연구 방법 확장

조선시대 관료의 생애와 토지대장, 근대 잡지, 한국 현대시처럼 서로 다른 한국학 자료가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을 만나 새로운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디지털 인문사회과학의 연구 성과를 담은 영문학술지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2026년 6월호를 발간했다.

디지털 인문학으로 넓히는 한국학 연구의 지평을 여는 AI생성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은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디지털 복원 등을 활용한 연구 논문을 수록한 영문학술지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제29권 1호를 발간했다.

 

이번 호의 특별기획 주제는 ‘한국학의 디지털 인문사회과학: 적용과 전망’이다. 역사와 사회, 문화, 문학 분야에 흩어진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연결하고, 기존 연구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 관계와 개념의 변화, 행정 구조를 분석한 연구 6편이 실렸다.

 

디지털 인문학은 역사 기록이나 문학 작품을 전산 자료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자료에서 공통되는 특징과 변화 과정을 찾아내고, 인물·단어·사건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 방법이다.

 

조선 관료의 삶, 개인 기록에서 집단 자료로

첫 번째 논문은 조선시대 양반 관료들의 생애와 경력 자료를 연결해 수명과 과거 합격 나이, 관직 경로를 분석했다.

 

기존의 인물 연구가 특정 관료의 생애나 기록을 깊이 살피는 방식이었다면, 이번 연구는 여러 사람의 자료를 함께 분석해 조선 관료 사회의 공통된 특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개별 인물의 기록을 연결하면 과거시험 합격 시기와 관직 생활, 수명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살필 수 있다. 조선시대 관료제와 지배층의 삶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다.

 

토지대장 디지털 복원해 조세 행정 분석

국가유산과 고문헌 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논문은 조선시대 양안과 토지세 자료를 다룬 연구다.

 

양안은 토지의 위치와 면적, 등급, 소유 관계 등을 기록한 토지대장이다. 조선시대 토지 제도와 조세 행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지만, 기록 방식이 복잡하고 자료가 여러 곳에 나뉘어 있어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연구진은 양안 자료를 디지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토지세를 조정한 원리와 행정 운영의 특징을 분석했다. 고문헌을 전산화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국가가 토지와 세금을 어떻게 파악하고 관리했는지 밝히려 한 연구다.

 

근대 잡지 속 ‘문명’의 의미 추적

근대 초 학회와 단체가 발간한 잡지를 분석한 연구도 실렸다.

 

연구자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발행된 잡지에서 ‘문명’이라는 말이 어떤 단어와 함께 사용됐는지를 살폈다. 특정 단어와 함께 등장하는 표현을 연결망으로 분석해 당시 지식인들이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했는지 추적했다.

 

‘문명’은 개항 이후 정치와 교육, 산업, 사회 제도를 설명하는 데 널리 쓰인 말이다. 그러나 시대와 발행 주체에 따라 뜻과 쓰임이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잡지의 어휘를 함께 분석하면 하나의 개념이 시대 속에서 어떻게 바뀌고 확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인권 담론과 현대시도 데이터로 분석

1990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사회의 인권 관련 자료를 분석한 논문은 인권 담론이 어떤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살폈다.

 

연도별로 자주 등장한 말만 세는 데 머물지 않고, 오랜 기간 이어진 주제와 시대에 따라 달라진 표현을 구분해 분석했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의 범위와 관심 대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자료로 확인하려는 연구다.

 

한국 현대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사람이 직접 분류한 감정 자료를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했다. 인공지능이 시의 정서와 표현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살피고, 자료 검색을 결합한 시 생성 가능성도 검토했다.

 

다만 인공지능이 문학 작품의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 생성된 결과를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별도의 비평과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이 시인을 대신한다는 주장보다, 문학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분석 도구의 가능성을 시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상 아이돌과 팬 문화도 한국학 연구 대상으로

특별기획의 마지막 논문은 가상 케이팝 아이돌 ‘플레이브’를 사례로 디지털 기술이 팬 문화와 아이돌 산업에 미친 변화를 분석했다.

 

한국학의 연구 대상이 전통문화와 역사 자료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 대중문화와 디지털 사회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상 인물과 실제 창작자, 팬이 맺는 관계를 통해 케이팝 산업에서 인간성과 기술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살폈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직지』 연구도 수록

이번 학술지에는 특별기획 논문 외에도 국가유산과 관련된 연구가 포함됐다.

 

일반 논문 가운데 한 편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도교와 무속 이미지의 결합을 다뤘다. 고분벽화의 그림을 단순한 장식으로 보지 않고 당시 사람들의 사후 세계관과 종교적 인식을 살피는 자료로 분석했다.

 

별도의 특별서평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을 다뤘다. 금속활자본과 목판본 『직지』의 서지적 특징, 백운화상의 인용 방식과 편찬 성격을 검토한 글이 실렸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직지』와 청주시의 협력 사업을 유산의 소장 경위와 디지털 활용이라는 관점에서 살핀 연구도 포함됐다.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로 어떻게 조사하고 공유할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자료 해석

디지털 기술은 짧은 시간에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이 일일이 읽을 때 놓치기 쉬운 반복과 연결 관계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데이터 분석 결과가 곧바로 역사적 사실이나 최종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원자료의 작성 배경과 누락 범위, 기록자의 관점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자료를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연결했는지에 따라 분석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한국학 연구의 새로운 도구로 자리 잡더라도, 원문을 확인하고 시대적 맥락을 해석하는 연구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The Review of Korean Studies』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998년 창간한 영문 학술지다. 2023년부터 누구나 논문을 이용할 수 있는 오픈액세스 학술지로 전환했으며, 2025년부터 온라인으로 발간하고 있다.

 

이번 호에 수록된 논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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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7.31 19:07 수정 2026.07.3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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