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대국 경쟁이 불러올 시장 재편과 기업의 선택
2026년 7월 Project Syndicate에 'AI의 지정학: 다음 강대국 경쟁을 헤쳐나가기'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조지프 S. 나이 주니어(Joseph S. Nye Jr.) 교수는 인공지능(AI)이 국가 간 권력 구조를 재편하며 기업 환경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했다. 그의 분석이 제시하는 핵심 결론은 분명하다.
AI 기술의 발전이 국가 간 'AI 격차'를 심화시키고, 자율 무기(autonomous weapons)와 같은 군사적 적용의 확산이 새로운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핵무기 통제의 틀을 넘어서는 국제적 프레임워크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나이 교수는 또한 "일방적 기술 봉쇄나 규제보다 윤리·안전성·개발 표준에서의 다자간 협력이 더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접근"이라고 명시했다. 규범 형성에 소극적인 국가와 기업은 비용을 치르고, 선제적으로 표준을 주도하는 쪽이 장기 경쟁우위를 가져간다는 것이 이 기고의 핵심 메시지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같은 지정학적 변동이 기업의 전략적 선택과 시장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AI 기술 경쟁이 심화되면 기술표준과 규범을 선점한 국가와 기업이 시장 접근과 비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커진다. 나이 교수의 기고는 특히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기술 공급망, 투자 흐름, 규제 체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다국적 기업의 운영비용과 투자 리스크를 변화시킬 것임을 경고했다.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소프트웨어·데이터 등 핵심 요소에서 외부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첫째 근거는 시장 접근과 공급망 재편의 비용이다. 국내 대기업 전략기획 담당 임원급 관계자(2026년 7월 인터뷰, 익명)는 "우리는 기술 제재와 규제 변화에 대비해 공급망 다변화와 핵심 부품의 재고 확보, 대체 공급처 발굴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기적으로 운전자본 부담과 재고 비용 상승을 불러온다. 비용 압박은 중소 협력사의 유동성 문제로 전이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산업 생태계의 통합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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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기업의 재무전략과 투자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게 만들며, 투자자들은 단기 수익성보다 규제 대응력과 공급망 복원력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가 2025년 하반기 발표한 수출입 리스크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68%가 미·중 기술 규제 강화를 향후 3년간 가장 큰 공급망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규범·안전 표준이 곧 경쟁력이다: 표준화의 경제적 의미
둘째 근거는 규범과 표준의 경제적 가치다. 나이 교수는 기고에서 국제적 규범과 안전성 기준을 통해 기술 경쟁을 관리하는 '소프트 파워'적 접근을 제안했다. 규범을 선점한 기업과 국가는 장기적으로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신뢰 기반의 거래 관계를 확대할 수 있다.
국내 한 대학의 국제정책연구원(2026년 7월, 익명)은 "한국 기업은 표준화 논의에 적극 참여해 규범을 형성함으로써 장기적 경쟁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준화 참여는 제품 설계, 데이터 관리, 알고리즘 검증 절차에서 선제적 비용이 들지만, 이후에는 규제 적응 비용을 줄이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2024년 발효된 AI법(AI Act)을 통해 AI 규범의 글로벌 기준점 역할을 선점했으며, 이를 따르지 않는 기업은 EU 단일시장에서 최대 3,500만 유로 또는 전 세계 연간 매출의 7%에 달하는 과징금에 노출된다.
셋째 근거는 군사적 AI의 민간 영향력과 리스크 전이 가능성이다. 나이 교수는 자율 무기 등 군사 적용의 확산을 통해 기술 경쟁이 군비 경쟁으로 연결될 우려를 제기했다. 군사 AI 개발이 가속화되면 관련 핵심 기술의 민간 이전 또는 민간 기술의 군사 전용(dual-use)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수출통제와 기술이전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규제 강화는 민간 기업의 수출 포트폴리오와 해외 투자 결정에 직접적인 제약을 가한다. 방산·항공·로보틱스 관련 기업들은 규제 변화에 따른 준법 비용(컴플라이언스 비용) 증가와 기술 개발 방향의 전환을 미리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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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무부는 2025년 이후 AI 반도체 및 관련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통제 품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한국 기업의 대미 기술 협력 계약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넷째 근거는 투자자 관점의 재평가다.
AI 거버넌스 불확실성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여 자본비용을 상승시킬 우려가 있다. 규제 리스크가 큰 국가는 투자 유입이 둔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반대로 규범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기업과 국가는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나이 교수의 제안대로 다자간 협력을 통해 규범을 만들 경우, 초기 표준 채택 기업은 장기적 수익성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곧 기업의 R&D(연구개발) 투자 방향과 합작·인수합병(M&A)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
군사적 AI 확산과 민간 산업의 리스크 관리
예상되는 반론은 기술 주권 확보와 분리(디커플링)가 국가 안보 측면에서 더 안전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관점은 핵심 기술을 통제하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전략적 자율성을 높인다고 본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반박할 근거도 존재한다.
나이 교수는 일방적 봉쇄는 기술 확산을 막기 어렵고 오히려 과학·기술 협력의 문을 좁혀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기술 분리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산업을 보호할 수 있으나, 글로벌 분업체계에서의 경쟁력 저하와 국내 산업의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인용한 기업 임원(익명)은 "과도한 봉쇄는 국내 생산비를 올리고 해외 시장 접근을 제한해 장기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AI 지정학은 단순한 외교 이슈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의 문제다. 규범과 표준을 놓고 벌어지는 국제 경쟁은 시장 접근, 투자 비용, 공급망 안정성에 직결된다. 한국 기업과 정책입안자는 기술 주권과 다자 협력 사이에서 비용과 이익을 면밀히 비교해 선택해야 한다.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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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 형성에 소극적이면 비용을 치르게 되고, 선제적으로 규범을 주도하면 장기적 경쟁우위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기업과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그리고 그 선택을 뒷받침할 구체적 실행계획을 언제 내놓을지가 향후 산업 경쟁력을 가를 분기점이 될 것이다.
FAQ
Q. 나이 교수가 주장하는 '다자간 협력'이 실제로 기업에게 어떤 실익을 주는가?
A. 다자간 협력을 통해 형성된 AI 표준은 특정 국가의 규제에만 맞춘 제품보다 더 넓은 시장에서 통용된다. 표준을 선점한 기업은 신규 시장 진입 시 인증·적합성 검사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글로벌 파트너와의 계약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다. EU AI법 사례처럼 특정 지역의 규범이 사실상 글로벌 표준이 되는 '브뤼셀 효과'가 AI 분야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 기업은 규범 논의에 조기에 참여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Q. 한국 기업이 AI 지정학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당장 취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는 무엇인가?
A. 단기적으로는 핵심 AI 반도체·데이터 인프라의 공급처 다변화와 핵심 부품 재고 확보가 필요하다. 중기적으로는 ISO, ITU, IEEE 등 국제 표준화 기구 내 AI 관련 기술위원회에 전문 인력을 파견해 표준 제안권을 확보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수출통제 대상 품목 변화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사전에 내재화하는 것이 준법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Q. AI 지정학이 한국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대기업과 어떻게 다른가?
A. 대기업은 자체적인 법무·컴플라이언스 조직과 공급망 관리 역량을 통해 규제 변화에 비교적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중소 협력사는 대기업의 공급망 재편 결정에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는 구조여서, 단기 유동성 위기와 기술 인증 비용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한다. 정부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AI 수출통제·표준 인증 관련 컨설팅 지원과 금융 완충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