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나무 아래 썩어 가는 사과 — 원조라는 이름의 거대한 낭비를 묻다

1,482억 달러의 실패 — 아프가니스탄이 세계에 보내는 경고

한 가구에 7달러 — 화려한 보고서와 빈 바구니 사이

마셜플랜보다 큰돈을 쏟고도 — 원조는 왜 가난을 못 이기나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한 장의 사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불의 시장 바닥, 소년들이 무더기로 쌓인 사과 더미를 뒤적인다. 멀쩡한 것을 고르는 게 아니다. 썩어 문드러진 것 가운데 그나마 성한 조각을 줍는 중이다. 이 한 장면이 아프가니스탄 비영리 원조 부문의 민낯을 압축한다.

 

2026년 4월, 카불에 사는 한 기자가 친구를 따라 중부 다이쿤디주의 농촌 마을들을 돌았다. 한 비영리기구가 농업 부문에서 벌인 사업의 성과를 추적하기 위해서다. 그 사업은 전기를 쓰지 않는 저장고를 농민에게 지어 주어, 과일과 채소를 몇 달간 보관했다가 제값에 팔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종이 위에서는 흠잡을 데 없는 그림이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선 기자가 마주한 것은 다른 풍경이다. 저장고는 마을 전체에서 고작 두세 가구의 사과만 들어갈 크기였고, 나머지 사과는 나무 아래 무더기로 썩어 가고 있었다. 

 

다른 마을에서는 또 다른 기구의 사업이 농민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그 단체는 수입 채소 종자를 사들여 나눠 주고, 몇 주에 걸쳐 재배 기술을 가르치고, 작물을 정기적으로 점검했다. 농민들은 땅과 물과 시간과 노동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수확은 보잘것없고 품질도 형편없었다. 측량과 교육, 운송과 직원 급여에 막대한 돈이 들어갔으나, 한 가구가 손에 쥔 채소는 고작 450아프가니, 미화로 7달러 남짓이었다. 그 손실을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보고서에는 '성공 사례'로 적혔을 그 사업이, 현장에서는 빈 바구니로 남았다.

 

이런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 농촌 어디서나 흔하다. 원조 기구들이 화려한 성과 보고서를 펴내는 동안, 정작 수혜자라 불리는 이들은 얻는 것이 거의 없다. 비용은 천문학적인데 산출은 초라하다. 슬픈 사실은, 이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경을 펼쳐 본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하고 미국 주도 연합군이 철수한 뒤, 인도적 지원과 자금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돈줄이 마른다고 해서 효율과 투명성이 저절로 살아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부실의 뿌리는 깊고 오래되었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해외 원조의 부패와 횡령과 낭비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전락했다. 미국의 한 매체는 이를 '1,482억 달러짜리 실패'라 불렀다. 

 

숫자가 증언한다. 미국이 세운 감시기구 SIGAR(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찰관실)는 2025년 12월 3일 마지막 보고서를 내놓았다. 2002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이 재건 명목으로 투입한 돈은 약 1,482억 1천만 달러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888억 달러가 안보 부문으로 흘러갔다. 감찰관실은 이 가운데 260억에서 292억 달러가 낭비와 사기와 부정으로 사라졌다고 추정했으며, 미국 자금에 직접 얽힌 오용·부실·부패 사례만 1,327건을 기록했다. 이 재건 사업이 삼킨 돈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을 일으킨 마셜플랜보다도 많았다. 이는 미국 정부 자금만 헤아린 수치이며, 다른 공여국이 흘려보낸 낭비는 추정조차 없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새는가. 구조 속에 답이 있다. 많은 외국 비영리기구는 사업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이행 협력단체에 맡기며, 그 단체는 다시 하청업체에 일을 넘긴다.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는 긴 사슬을 거치는 동안, 품질 관리는 헐거워지고 이윤을 남기려 일을 대충 하려는 유혹이 끼어든다. 협력단체의 으뜸 관심사는 정작 주민의 절박한 필요가 아니라 자금 확보 그 자체다. 그래서 서류상으로는 근사하나 실제 삶에는 별 보탬이 안 되는 제안서가 쏟아진다. 보수에서도 거품이 인다. 현지인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외국인 직원은 연봉 1만에서 2만 달러를 받으며 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만의 병이라 말하면 거짓이다. 전 세계 개발 부문은 낭비와 비효율로 악명이 높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통제의 부재와 현장 접근의 어려움이 그 병을 한층 깊게 만든다. 그러나 위기는 곧 전환의 문이기도 하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단순한 첫걸음은 자격을 갖춘 현지인이 사업을 기획하고 이끌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역의 문화와 실정, 주민의 진짜 필요, 시장 가격과 현장 조건을 안다. 협력단체와 하청의 긴 사슬을 줄이고,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과 현장 일꾼의 목소리를 직접, 꾸준히 들어야 한다. 실업과 기반 시설, 시장 접근처럼 나라 전체가 안고 있는 절박한 과제에 투자할 때, 그 사업은 비로소 지속 가능한 열매를 맺는다.

 

이쯤에서 펜을 내려놓고 고백하듯 적는다. 나는 가난한 마을의 흙냄새를 오래 맡아본 사람이다. 그 길에서 배운 진실 하나가 있다. 선의는 그 자체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과 실제로 돕는 일 사이에는, 나무 아래 썩어 가는 사과만큼의 거리가 놓여 있다. 공여자의 보고서와 농부의 빈 바구니 사이, 그 아득한 틈을 메우는 길은 하나뿐이다. 높은 자리에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무릎을 굽혀 그 땅의 흙을 손으로 만져 보는 겸손이다. 누군가를 진실로 돕고자 한다면, 먼저 그의 눈높이로 내려가 그가 정말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묻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우리가 건넨 도움은 그의 손에 닿기도 전에, 어느 긴 사슬의 어디쯤에서 썩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작성 2026.06.17 19:39 수정 2026.06.1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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