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 간의 극적인 타협안 발표 이후, 전 세계 에너지의 심장부인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가능성과 이를 바라보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깊은 고뇌와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동을 걸고 석유가 흐르게 하라"며 조속한 정상화를 선언했으나, 바다 위에는 수개월간 지속된 군사 충돌의 여파로 부설된 기뢰와 해상 통항료 징수권을 둘러싼 외교적 이견 등 수많은 복병이 남아 있다. 선박들의 안전과 국제 물류망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언론 보도와 전문가 진단을 통해 심층적으로 조명한다.
미·이란 극적 합의 이면의 보이지 않는 암초, 기뢰 매설 위협과 통항료 분쟁에 선주들은 여전히 신중론
국제 에너지 안보의 숨통이자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혈맥인 호르무즈 해협에 마침내 서광이 비치는 듯하다. 워싱턴과 테헤란이 오랜 군사적 대치를 끝내고 잠정적인 타협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특유의 거침없는 어조로 선박들을 향해 "엔진에 시동을 걸고, 석유가 다시 흐르도록 하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승전보와 같은 백악관의 호령에도 불구하고 정작 거친 바다 위에서 거대한 자산을 움직이는 글로벌 해운업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외교적 성과를 자축하는 동안, 수개월간 지속된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좁은 해협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기뢰가 도사리고 있으며, 통항권과 징수 비용을 둘러싼 또 다른 법적·지정학적 갈등이 선박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100여 일의 봉쇄가 남긴 상흔과 갑작스런 개방 선언
지난 2월 28일 이 지역에 전격적인 군사 충돌의 포성이 울려 퍼진 이후,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거대한 해상 감옥으로 변모해 왔다.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수백 척의 유조선과 거대한 컨테이너 화물선들이 바스라(Basra)만 내부와 인근 해역에 꼼짝달싹 못 한 채 고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 상선들이 적대 세력의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고, 해협을 장악한 이란 측은 소수의 선박에 대해서만 막대한 통항료를 요구하며 제한적인 이동만을 허용했다. 이 같은 봉쇄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었고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에너지 충격을 안겼다.
이처럼 꽉 막혀 있던 흐름에 물꼬를 튼 것은 미·이란 간의 전격적인 합의였다. 이란의 반관영 통신에 따르면 양국이 조율 중인 14개 조항의 합의 내용에는 '향후 30일 이내에 호르무즈 해협을 전면적으로 다시 개방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외교적 진전을 바탕으로 오는 6월 19일로 예정된 공식 서명식 이후 해협의 자유 통항이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회복될 것이라 공언했다. 전 세계 유가의 안정을 꾀하고 중동에서의 군사적 부담을 덜고자 하는 워싱턴의 강력한 이해관계가 이번 조기 개방 선언의 추진력이 된 것이다.
백악관의 장밋빛 전망과 해운 거두들의 깊은 고뇌
정치권의 장밋빛 선언과 달리 해상 물류의 실무를 담당하는 국제 해운 기구들의 반응은 대단히 조심스럽다. 글로벌 해운업계를 대변하는 국제해사기구(IMO)와 세계 최대의 선주 단체인 국제해사협의회(BIMCO), 그리고 유조선 선주들의 모임인 인터탱코는 일제히 "정치적 구호에 비해 선박들이 안심하고 운항할 수 있는 세부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지도자들은 해협을 연다고 외치지만, 정작 선박의 안전을 보장할 구체적인 일정표나 안전한 인도적 항로의 좌표는 제공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특히 BIMCO의 보안 책임자인 야코브 라르센(Jakob Larsen)은 성명을 통해 "현재 해운업계가 맞닥뜨린 안보적 상황은 여전히 극도로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양국 정부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무작정 유조선들을 해협 안으로 진입시키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까운 막대한 위험을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인터탱코의 해사 국장인 필립 벨처(Phillip Belcher) 역시 모든 선주와 선장들에게 "백악관의 발표에 현혹되지 말고, 철저하게 보수적이고 신중한 접근 방식을 유지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보이지 않는 기뢰의 공포와 통항료를 둘러싼 쟁탈전
해운업계가 이토록 발걸음을 멈추고 주저하는 현장의 가장 큰 이유는 바다 밑에 숨겨진 물리적 위협, 즉 기뢰 때문이다. 인터탱코의 총지배인 팀 윌킨스(Tim Wilkins)는 미국과 이란 양국 향해 "해협의 전면 개방을 논하기 전에, 적대 기간, 부설된 무차별적인 기뢰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소해(掃海) 작업이 완벽하게 완료되었음을 국제 사회에 먼저 증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바다는 움직이는 수천억 원 상당의 유조선과 수십 명 선원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IMO는 오만과 이란 등 해협의 주권 국가들과 협력하여 고립된 선원들의 안전한 대피와 기뢰 없는 '클린 루트(Clean Route)'를 개척하기 위한 긴급 실무 협의에 착수했다.
돈을 둘러싼 외교적 장외 투쟁도 현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이 영구적이며 '무료'로 이루어질 것이라 공언했으나, 테헤란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이스마일 바게이는 "이란이 그동안 해협의 안전을 위해 제공한 해사 서비스와 관리 비용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며 통항료 징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이란 언론들 역시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실질적인 관할권과 요금 징수 권한은 오직 이란과 오만 두 해안국에만 존재하며, 미국을 비롯한 제3국은 이에 관여할 법적 권한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선주들 입장에서는 군사적 위험 외에도 부당한 경제적 강제 조치에 다시금 휘말릴 수 있다는 이중고에 직면한 셈이다.
인간의 온기가 담긴 안전 보장이 선행되어야 할 시간
결국 이번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둘러싼 논란은, 정치적 외교 성과를 서둘러 과시하려는 권력의 언어와 현장에서 목숨을 담보로 항해하는 노동자 및 기업들의 현실의 언어가 얼마나 크게 괴리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시적인 합의문에 도장을 찍는 것만으로 바다 위의 평화가 곧바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물류의 복원과 에너지 안보의 확립은 수면 아래 가라앉은 기뢰를 꼼꼼히 건져내고, 통항하는 선원들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미사일이나 나포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따뜻한 신뢰가 구축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람이 직접 안전을 체감하지 못하는 해협은 아무리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한들 차갑게 버려진 유령의 바다에 불과하다.
향후 6월 19일로 예정된 미·이란 간의 공식 서명식 이후, 과연 미국과 국제 사회가 해운업계의 정당한 요구인 '기뢰 완전 제거'와 '안전 보장 체계'를 어떻게 구체화할지가 핵심 관건이다. 아울러 이란과 오만이 주장하는 관할권 문제를 국제법적 테두리 안에서 매끄럽게 조율하지 못한다면, 호르무즈는 언제든 다시 닫힐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남게 될 것이다. 거친 파도 속에서 묵묵히 키를 잡은 선원들의 안녕과 글로벌 경제의 안정적 순환을 위해, 이제는 거창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