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열체험관 활동지 속 박재혁 의사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부산 동구, 미싱 거리 근처에 박재혁 거리라는 갈색 간판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마음의 빚 같아 마음먹고 하루 방문했다.
많은 독립운동가 장소처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갈색 간판이 있는 거리를 계속 돌았지만, 박재혁 의사 관련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길 이름만 갈색으로 되어 있을 뿐 박재혁 의사의 업적이라든지 생가터라든지 어떠한 것도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KT 범일 타워 앞에 2020년까지 안내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떤 이유인지 사라졌다.
게다가 박재혁 의사 생가 주소를 찾아서 가보니 누군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어떠한 표시도 없어서 주소만으로 확인해 볼 뿐이었다. 빈집이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닫혀 있는 누군가의 사유지에 확인할 길은 없었다.
생가를 찾아가는 길에 화려한 미싱 거리 안내판과 비교하니 박재혁 의사에 대한 대우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이 독립운동가를 박대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조금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그리고 범일동 가구 거리 골목에 있는 주차장에는 박재혁 의사의 생가가 있었다는 패널이 있다고 해서 주차장을 또 한참 찾았다. 미싱 거리는 가는 길에 안내판이 잘 보이더니 박재혁 의사는 찾으려고 하니 그 좁은 지역을 한 시간 가까이 서성거렸다.
광주 양림동에 정율성 거리가 있다. 정율성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를 만들면서 조성된 장소이다. 아파트 바깥 공간에 야외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덕분에 정율성이라는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한 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얼마 전 다시 방문했을 때, 분단의 이념 속 한민족 개념은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괴롭혀서 동상이 없었다. 그리고 음악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전과 같았다. 단군 동상 목을 베거나 정율성 독립운동가 동상을 훼손하는 이나 다 기독교인이었다.
한민족 개념은 없고 종교적 신념만 가진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기독교인이 자기 종교만 소중하고 국가나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남의 종교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모든 종교인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만 이웃으로 여기라고 만든 편협한 십계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민족은 없고 분단의 이념만 가진 이가 해방 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들이 독립운동가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독립운동가 장소를 갈 때마다 느껴진다. 부산에는 박재혁 거리 외에도 폭탄 투척 의거지가 있다.

2026년 5월 11일 폭탄 의거지 방문했을 때 모습 - 참고로 5월 11일은 박재혁 의사 순국일이다.
과거 부산경찰서 자리 근처에 폭탄 투척 의거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하나 있다. 그 안내판 하나를 찾기 위해서도 역시 지도에 의존해서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안내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박재혁 의거가 대단한 것은 서장을 직접 찾아가 죄를 묻고 폭탄을 던졌다는 것이다. 본인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서장과 대면한 좁은 공간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나는 상해에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뜨렸기에 너를 죽이는 것이다!" 라고 외쳤다고 한다.
하시모토 슈헤이 경찰서장은 당시 경상남북도 경무부 관내 수석 서장으로서 독립운동가들을 악랄하게 탄압하고 체포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래서 의열단장인 김원봉 선생님도 박재혁도 그냥 의거만이 아닌, 죄를 묻는 의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가 있는 의거이기도 하고, 의열단이 일으킨 의거 중 처음으로 성공해서 또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박재혁 의사 동상이 성지곡 수원지에 세워져 있다. 대중교통에서 내려서 한참 걸어가야 나오는 곳이다. 게다가 성지곡 수원지가 일제강점기 산물이라는 것이다. 1909년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일제강점기 부산 지역 수탈 역사의 상징물이다. 부산에 많은 수원지가 그러하듯, 이곳도 당시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생활용수 확보를 위해 지어졌다. 이런 장소에 독립운동가 동상을 세울 계획을 세운 이는 한민족이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그 외에 그의 모교라 볼 수 있는 개성학교에 그의 흉상 동상이 있다고 한다. 부산공립상업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2학년 재학 중 최천택(崔天澤), 오재영 등과 함께 금서인 대한제국 보통학교의 국사교과서인 <동국역사(東國歷史)>를 비밀리에 배포하고 돌려보다가 구금을 당하였다고 한다. 동국 역사는 1906년 유근과 원영의가 저술하고 장지연이 교열하여 발행한 소학교용 국사 교과서입니다. 중등용 교과서인 『동국역대사략』을 당시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국한문체로 쉽게 풀어쓴 책이라고 한다.
참고로 동국 역사는 ‘단군 조선기’가 첫 장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단군은 신화가 아니였다. 엄연히 역사책에 존재하던 인물이었다. 해방 후 한국 정부와 배운 이들이 단군을 신화로 만들고 광신도들이 단군 동상 목을 베는 지경에 이르게 만들었다.
지방 자치단체장이 바뀌었다. 바뀐 부산시장이 박재혁 독립운동가를 어떻게 대접할지 궁금하다. 여태까지 시장과 다르게 대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를 마무리하려 한다.
보통 교과 동국 역사 첫 장
東方이初에君長이無ᄒᆞ야
人民이草衣木食ᄒᆞ며
夏巢冬穴ᄒᆞ더니
神人이太白山今寧邊府妙香山檀木下에降ᄒᆞ야
聖德이有ᄒᆞ거ᄂᆞᆯ
國人이推尊ᄒᆞ야王을ᄉᆞᆷ고
號ᄒᆞ야曰檀君이라ᄒᆞ니
此ᄂᆞᆫ唐堯二十五年戊辰이오
我大韓의開國記元前三千七百三十四年이라
歷世의文獻이無徵ᄒᆞ야不可考러라
(띄어쓰기는 이해하기 쉽게 필자가 한 것이고 원래는 없음)
정율성 동상 훼손 보수진 전도사
일제강점기 잔재 성지곡 수원지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789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