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이 기억해야 할 날 -6월 10일

일제강점기에는 6.10 만세운동이, 독재 시절에는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날

2026년 100주년인 6.10 독립 만세운동에 대하여

출처: 국가보훈부 -6월의 독립운동가

 

 6월 10일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하나는 1926년 6월 10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1987년 6월 10일에 일어난 민주 항쟁이다. 

 먼저 6·10만세운동은 1926년 순종 황제 인산일에 학생과 종교계, 그리고 사회주의 활동 참여자들이 계획하고 실행하였던 독립 만세운동이다. 3.1운동(1919년), 광주학생운동(1929년)과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만세운동으로 평가된다. 3.1 만세운동만큼 한민족이 알아야 할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보훈부에서는 2026년 6월 독립운동가로 박하균, 강달룡, 박내홍 선생을 추천했다. 박하균 독립운동가는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참여하여 6·10만세운동을 주도한 분이다. 순종 인산일을 계기고 고종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났던 3.1 운동과 같은 만세운동을 벌이고자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았다. 고종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났던 3·1운동을 떠올리고, 순종의 인산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키고자 계획하였다. 거사를 앞두고 주요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박하균 선생님을 비롯한 학생들이 주도되어 만세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6월 10일 오전 8시 순종의 어가행렬이 창덕궁을 출발하여 관수동을 지날 무렵, 수표교 부근에서 박하균이 격문을 날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인근에 모여 있던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이 호응하였고, 뒤이어 여러 학생이 참여하였다. 서울 시내 8개소에서 대거 천여 명의 학생이 시위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박하균 독립운동가는 만세운동 주도로 함흥형무소에서 1년의 옥고를 치르고 1927년 9월 20일에 출옥하였다. 그리고 세 번의 옥고를 치를 만큼 끊임없는 항일운동을 벌였지만, 사망일을 모르고 있다. 

 당시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조선민중아! 우리의 철천의 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단기 4259년 6월 10일

 

 강달룡 독립운동가는 박하균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3.1 만세운동을 주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진주에서 1919년 3월 18일의 진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28년 2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후 1933년 9월 16일 출옥하였다. 7년 2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정신이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1940년 6월 7일 사망하였다.

 박내홍 독립운동가는 3.1 만세운동에 천도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같이 참여했다.

 

일제가 1919년 8월에 발표한 문화정치의 시행에 발맞추어, 이돈화, 박래홍,‧정도준 등이 1919년 9월에 ‘천도교 청년교리강연부(天道敎靑年敎理講硏部)’라는 청년단체를 조직하였다. 1928년 10월 5일, 서을봉은 서울 종로 경운동의 천도교회 사무실에서 당시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이자 신간회 본부 총무간사였던 박래홍 선생을 단도로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살해 사건의 배경에는 친일 성향의 천도교 신파를 육성하기 위해 협조적이지 않은 천도교 인물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일제강점기 천도교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고, 많은 조선 민중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제100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일을 맞아 1926년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6·10만세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른 이병립 선생(애국장)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13명을 포상한다고 밝혔다.

 포상에는 이병립 선생과 같은 연희전문학교 학생으로 6·10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주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는 활동을 펼친 유경상 선생(건국포장), 신문배달부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만세 시위에 사용할 인쇄물 제작에 도움을 주고 직접 배포한 김낙환 선생(대통령 표창) 등이다.

 늦게라도 포상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더 많은 독립운동가를 제대로 대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목숨을 바쳐 일상을 포기한 그들에게 포상이 그 고생을 다 보상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사는 이들이 감사를 표현하는 최소한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2026년 6월의 독립운동가

천도교인 김세열 일가 학살

 

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1968713_30711.html

 

 

작성 2026.06.09 20:09 수정 2026.06.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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