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장은 흔히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린다. 18홀을 도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고, 실패를 마주하며, 그 실패를 수습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손에 골프채를 쥐여주며 성취와 결과를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골프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스스로 실수를 다독이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 탄력성’을 배우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오래전, 10대 시절 뉴질랜드 전지훈련에서 출전했던 대회가 기억난다. 숙소를 제공해주셨던 하우스 오너 가족들이 응원을 나오셨는데, 마치 US 오픈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열기였다.
한 홀에서 공이 벙커에 빠졌다. 멋지게 탈출하겠다는 욕심이 앞선 탓일까. 첫 미스 샷 이후 당혹감과 창피함, 그리고 분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둥바둥하며 벙커를 탈출하는 데만 6번의 샷을 해야했다. 겨우 홀을 벗어났을 때 많은 분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저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다음 340야드 파4 홀에서 앞홀의 가시지 않은 분노를 담아 휘두른 드라이버 샷이 생애 처음으로 내리막을 타고 그린 앞 40야드 지점까지 날아갔다. 결국 버디를 잡아냈고, 그 대회에서 핸디 대비 좋은 성적으로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우승의 기억보다 더 선명한 것은 6번 만에 벙커를 탈출했던 그 처절했던 기억이다. 그때 얻은 '굳은살' 덕분에 나는 지금도 웬만한 벙커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실패가 곧 끝이 아님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훈수라는 이름의 ‘가로막기’
아이가 벙커에서 쩔쩔매거나 어이없는 실수를 할 때, 부모는 참지 못하고 훈수를 둔다.
“손목을 써야지”
“헤드업 하지 마”
“연습을 그 따위로 해서 되겠니?”
하지만 이는 아이의 배움 기회를 빼앗는 일이다. 골프장은 아이에게 '실패를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실'이다. 부모의 훈수가 찰나의 스코어를 낮춰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뇌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앗아간다. 부모가 입을 닫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실수의 원인을 탐색하며, 스스로 다음 샷을 결정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우리 아이들은 쉼 없이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에게 골프장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 될 수 있다. 18홀을 도는 동안 이어지는 긴 침묵은 아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휴식이자 자기 성찰의 시간이다. 부모의 역할은 샷에 대한 평가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가 샷을 한 후 공을 향해 걷는 시간 동안, 아이의 눈에 담긴 숲과 바람, 그리고 고요한 자기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부모의 침묵은 아이가 자신만의 리듬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가장 큰 응원이다.
결국 골프를 통해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은 80타를 치는 기술이 아니라, 100타를 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웃으며 다음 홀로 이동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다.
부모들에게 몇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결과보다 과정을 물어봐 주세요: "몇 타 쳤어?" 대신 "오늘 어떤 샷이 가장 기억에 남아?"라고 물어보세요.
실수를 축하해 주세요: 실패는 더 나은 다음 샷을 위한 데이터입니다.
먼저 보여주세요: 부모 스스로 라운딩 중 겪는 실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교육적입니다.
골프채를 든 아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긴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공을 멀리 보내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손을 꽉 잡고 이끌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휘두를 때까지 묵묵히 뒤에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레슨이다. 골프는 아이가 평생 동안 자신의 인생이라는 경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연습하는 과정이다. 부모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옆에 있다면, 아이는 어떤 해저드에 빠져도 웃으며 다시 공을 찾아 나갈 것이다.
서지연 골프코치는 LPGA ClassA, KLPGA 멤버로 LPGA 인터네셔널 섹션 4관왕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30년 경력의 골프 코치이자, ‘골프를 통한 신나는 성장' 을 캐치플레이로 싱그로운골프를 운영하며 골프를 안전하고 부상 없이 쉽게 코칭하는 베터랑으로 통한다. ‘골프는 문화다' 라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니어와 프로를 목표로 하는 프로지망생은 물론 일반골퍼들을 위한 클라스를 꾸준히 운영하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