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란 약효가 없는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믿고 복용했을 때 병세가 호전되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이 “플라시보(Placebo)”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마음에 들도록 하다”는 뜻이며, 제2차 세계대전 중 약이 부족할 때 식염수를 모르핀(Morphine)이라고 속여 투여한 결과 통증이 완화되었다는 사례가 있다. 그런 가짜약 효과가 생기는 이유는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이 증가하고, 감정 관련 뇌 부위가 활성화되고, 감정적 반응과 자각 등이 활성화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스포츠에는 이와 비슷한 베니스터 효과(Bannist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1950년 영국 옥스퍼드 의대생 로저 베스니터(Roger Bannister)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뛰어난 육상 선수였다. 그가 가진 목표는 1마일을 4분 안에 돌파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1954년에 1마일을 3분 59.4초에 돌파하며, 당시 “마의 벽”으로 여겨졌던 4분 대를 처음으로 깨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베스니터가 “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도전한 결과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4분 대 벽을 깨자 다른 선수들도 이에 자극 받아 단기간에 같은 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는데 그런 자극 현상을 베니스터 효과(Bannister Effect)라 한다.
실제로 베니스터가 4분대의 기록을 깨뜨리자, 한 달 만에 10명, 1년 후에는 37명, 2년 후에는 300명 이상이 같은 기록을 달성했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심리적 장벽이 극복되면 불가능이 얼마든지 가능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 사람의 성공이 집단 전체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성공을 가져오게 한다는 사실, 즉,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부른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런 베니스터 효과(Bannister Effect)는 자신감과 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기본적인 재능과 실력이 전제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운동선수들만 해도 우선 기본적인 체격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농구선수나 배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기본 체격이 갖추어졌을 때 훈련도 필요하고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도 필요한 것이지 기본 체격이 전혀 안되는 데도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 하나만으로 성공할 리는 없다.
이름난 가수나 명창들을 봐도 그렇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각종 대회를 휩쓸었던 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예부터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생겼다. 이름난 학자들이나 선비들도 마찬가지이다. 통일신라의 6두품 출신 문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최치원(崔致遠)부터 그랬다. 최치원은 12살 때인 868년,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도 마라. 나도 아들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런 말을 듣고 떠난 12살의 어린 최치원은 “남이 백의 노력을 하는 동안 나는 천의 노력을 했다”는 기록을 남길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하여 당초의 10년을 4년 단축하여 6년만인 18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했다.
최치원은 급제한 2년 후 지금의 장쑤성 난징 지방인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의 현위(縣尉)에 임명이 되었다. 그리고 24세가 되었던 서기 880년, 당시 당나라를 어지럽히던 황소의 난(黃巢之亂)이 발발하자 최치원을 문객으로 받아주었던 고병(高騈)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으로 임명되어 난을 토벌하기 위해 나섰을 때 최치원은 고병(高騈)의 도움으로 도통순관승무랑(都統巡官承務郞) 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의 직책을 맡아 4년간 종군했다. 서기 881년, 최치원은 반란군을 동요시키고 황소에게 투항을 권유하기 위해 격문을 써서 여러 곳에 뿌렸는데 주동자 황소(黃巢)가 그 격문을 읽다가 너무 놀라 침상에서 굴러 떨어져 죽었다는 일화가 있을만큼 명문이었다고 한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는 조선의 영의정 부사, 황희(黃喜) 정승도 그랬다. 황희는 보수적이고 강직한 스타일로 시국을 보는 시각이 뛰어났고 당대의 알아주는 군자로서 범죄 사건에도 너그러움을 위주로 처리했다. 강한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6조 판서직을 모두 수행하면서 정책 회의 때마다 주목할 만한 의견을 자주 냈고 복잡한 토론을 거쳐도 결국 황희의 안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면이 있었던 세종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위에서 보듯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사람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렸던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이름을 날렸다는 말은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부른다는 말이다. 이렇게 볼 때 그대에게 꿈이 있다면 우선 작은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그 작은 성공이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와 베니스터 효과(Bannister Effect)를 발휘하면서 더욱 큰 성공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손 영일 컬럼
*피그말리온 효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