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5월 27일, 러시아 안보 회의 서기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의 국방장관 마울라위 모하마드 야쿠브가 마주 앉았다. 야쿠브는 누구인가. 탈레반 창시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의 친아들이며, 한때 탈레반의 군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두 사람 사이의 책상 위에 놓인 한 장의 문서 — '군사·기술 협력 협정', 즉 양해각서(MoU).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질문을 던진다. 한 장의 비밀스러운 종이가 정말 아프간의 미래에 한 줄기 빛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어둠의 시작일 것인가.
침묵 속에 서명된 협정, 그 무게
이 협정은 모스크바주에서 열린 국제 안보 포럼 부대 행사로 조용히 서명되었다. 러시아 측은 즉각 서방을 향해 아프간 동결 자산 해제와 20년 점령에 대한 재건 책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발 더 나아간 보도도 있다. 휴대용 방공무기 시스템(MANPADS)과 광범위한 항공 방어 시스템 공급이 이 협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2024년 탈레반은 러시아제 방공 장비 도입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협정은 갑작스레 떨어진 별이 아니다. 러시아는 2025년 4월 탈레반을 자국 내 테러 조직 명단에서 제외했고, 2025년 7월에는 탈레반 정부를 공식 인정한 첫 주요국이 됐다. 같은 해 양국 교역액은 5억 3천만 달러를 돌파했다. 2026년 1월 15일에는 아프간 대사 '굴 하산 하산'이 푸틴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두 나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고, 그 끝자락에 이번 양해각서가 놓인 것이다.
강대국은 누구를 위해 손을 내미는가
이번 협정을 진심으로 환영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강대국이 약소국과 손을 잡는 이유는 결코 그 약소국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깊은 수렁 속에 있고, 자국 경제는 서방의 제재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런 러시아가 아프간에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가 되어줄 경제력과 군사력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가. 본인은 회의적이다.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이후, 그리고 1991년 소련 자체가 붕괴한 이후, 모스크바는 아프간의 어떤 정부에도 의미 있는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한 적이 없다. 1990년대 내전 시기에도, 2001년 이후 카르자이 정부 시기에도, 그리고 가니 정부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러시아가 갑자기 아프간의 전략적 후원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의 진짜 동기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진짜 관심은 두 가지에 모이고 있다. 첫째, 아프간 영토가 ISIS-K나 그 밖의 극단주의 세력에 의해 자국과 중앙아시아를 위협하는 기지가 되는 일을 막는 것. 둘째, 아편과 마약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 그 외에 아프간 땅에 대규모 경제 투자를 단행할 의지도, 능력도 두 나라에는 없다. 그러니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숨은 진짜 거래는, 사실 매우 좁고 차가운 안보 거래에 가깝다.
노후한 무기고와 두랜드 라인의 그림자
지금 카불의 군사적 상황은 어떠한가. 2021년 미군 철수 당시 아프간이 물려받은 무기 체계는 미국제와 러시아제가 뒤섞인 묘한 조합이었다. 미국은 당연히 부품 공급과 정비 지원을 끊었기에, NATO 표준 탄약과 미국제 장비는 대부분 소진됐거나 사용 불능 상태다. 남은 옛 소련제 장비 역시 노후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카불의 국방예산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탈레반은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다. 2026년 초 두랜드 라인을 따라 파키스탄과 격렬한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파키스탄군의 공습으로 탈레반의 군사 인프라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내부적으로는 파슈툰계와 타지크계 탈레반 파벌 간의 균열이 폭력 사태로 번지고 있다. 바다흐샨 지역에서는 금광 채굴 수익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고, 모스크바 방문 불과 며칠 전인 5월 21일에는 마자르-이-샤리프에서 긴급 안보 회의가 열렸다. 결국 탈레반이 모스크바에 손을 내민 것은 한 마디로 '벼랑 끝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 잡은 손이, 과연 그를 끌어올릴 손인지 함께 떨어뜨릴 손인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자리
지금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건 사실 따로 있다. 아프간은 지금 인도와 파키스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이란이라는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강대국들 한가운데 놓여 있다. 약소국이 이렇게 이해가 충돌하는 모든 진영과 동시에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쪽 손을 잡으면, 다른 쪽 손은 적의 손이 된다. 결국 아프간은 강대국 경쟁의 수혜자가 아니라 희생자가 될 위험이 크다.
진짜 문제는 아프간 국내에 있다
탈레반은 이번 양해각서를 국제적 위상 강화의 발판으로 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게 있다. 국제적 정당성은 결코 국내 정당성을 대체할 수 없다. 모든 진정한 국제적 인정은 자국민의 동의와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자란다. 러시아와 중국이 탈레반과 관계를 확대했음에도, 두 나라 모두 유엔 안보리에서 탈레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해제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핵심 인사들이 유엔 제재 명단에 남아 있는 한, 진정한 국제적 인정은 머나먼 신기루로 남을 것이다.
지금 아프간 국민의 고통은 이 거대한 외교의 무대와는 또 다른 차원에 있다.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과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거리에서 사라졌고, 종교적 소수자들은 침묵 속으로 숨었다. 본인이 만나본 아프간 형제자매들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더 깊은 체념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체념 속에서도, 새벽마다 조용히 무릎 꿇는 영혼들이 있다. 그들의 기도가 한 장의 양해각서보다 무겁다.
무대가 아니라 다리가 되어야 할 땅
결론은 분명하다. 지금 아프간이 가야 할 길은 강대국 경쟁의 무대가 아니라, 지역의 다리가 되는 길이다.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페르시아 세계와 인도 아대륙을 잇는 무역과 연결성의 플랫폼이 되는 것.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안에서부터 변해야 한다. 투명한 거버넌스, 정치적 포용, 그리고 공적 책임이라는 세 다리 없이는 어떤 외교적 화려함도 결국 모래성에 불과하다.
나는 오래전 카불의 한 좁은 골목에서 어느 노인이 외신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을 잊지 못한다. 그는 30여 년의 전쟁을 모두 살아낸 사람이었다. 소련의 탱크도, 무자헤딘의 총성도, 탈레반의 첫 등장도, 미국의 폭격도, 그리고 다시 탈레반의 귀환까지 — 그 모든 풍경이 그의 얼굴에 주름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 그동안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짧게 답했다. "외국 군대의 군화 소리도 아니고, 폭탄 소리도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되는 그 침묵이죠."
오늘 모스크바에서 서명된 한 장의 종이가, 그 노인의 손주에게 꿈을 돌려줄 수 있을까. 강대국의 펜은 늘 약소국의 가슴 위에서 춤을 추지만, 그 춤이 끝나는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눈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