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님, 제 사진이 성형외과 광고에 쓰이고 있어요. 저는 제 얼굴을 성형외과에 판 적이 없는데요... "
"박사님, 제 아이 사진이 중고 거래 사기 프로필로 뜨네요? 저는 제 아이 얼굴을 어디에도 판 적이 없는데...“
치안 행정 전문가로서, 그리고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수많은 인권 침해 현장을 마주해 왔지만, 최근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에 대한 이 서늘한 외침만큼 내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든 것은 드물었다.
35년 경찰 현장에서 수많은 끔찍한 범죄의 민낯을 마주했지만, 이 비가시적인 데이터 폭력만큼 한 인간의 존엄을 완벽하게 해체하고 말살시키는 것은 없었다. 물리적인 흉기나 혈흔은 없지만, 타인의 정체성을 무단으로 복제하고, 능욕하며, 영혼까지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하고도 잔혹한 살인 행위다.
'데이터 주권'. 개인에게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주권을 부여하고, 이를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권리다. 우리는 이 권리를 '망각'이라는 치유의 기능을 상실한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간 존엄의 권리라 불러야 한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는데 인간의 윤리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참담한 현실, 이것이 35년 치안 행정 전문가가 목격한 2026년 대한민국 인권의 서늘한 화두다.
데이터 무덤: '망각'이라는 문명의 축복이 사라진 곳
오늘날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로 불리며 문명을 이끌고 있다. 클릭 몇 번, 프롬프트 입력 한 줄이면 우리의 얼굴은 차가운 데이터 조각이 되어 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하고, 거대한 플랫폼 기업의 상업적 무기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던 '디지털 관도'나 '방관자 효과'는 군중의 관음증을 AI로 자동화했다면, 데이터 주권 침해는 한 인간의 고유한 역사를 담은 미소와 표정, 그리고 죗값을 치른 과거까지, 모든 것을 '콘텐츠'라는 차가운 이름으로 소비하게 만든다.
35년 경찰 현장에서 수많은 이들의 '사건 종료'를 목격했지만, 디지털 세상은 결코 사건을 종료시키지 않았다. 그 캐비닛은 영원히 열려 있었고, 과거의 낙인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영원히 끝나지 않는 디지털 감옥이 되어 있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직조된 이 '데이터 노예'의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알 권리와 데이터 주권의 충돌: 정의의 저울은 누구를 겨누는가
우리는 흔히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라는 얄팍한 명분으로 타인의 비극을 촬영하고 유포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려 애쓴다. 그러나 인권 전문가로서 나는 확신한다.
극도의 공포와 고통에 처한 이의 동의 없는 기록, 죗값을 치르고 사회에 복귀한 이의 과거, 그리고 10대 시절의 무심한 낙인까지, 이 모든 것이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35년간 몸담았던 경찰 조직을 떠나며 내 뇌리에 가장 끔찍하게 각인된 장면은 훼손된 시신이 아니었다. 피 흘리며 쓰러진 피해자의 훼손된 존엄을 짓밟으면서까지 더 자극적인 앵글을 찾으려 발을 구르던 구경꾼들의 텅 빈 동공이었다.
딥페이크는 이 텅 빈 군중의 관음증을 AI로 자동화했다면, 데이터 주권 침해는 이 군중의 관음증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사냥터로 만든다.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는 더욱 절망적이다.
"그러게 왜 소셜 미디어에 얼굴 사진을 함부로 올려서 표적이 되냐",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친구의 단호한 한마디, 피해자를 향해 손 내미는 사회적 연대가 그 어떤 방화벽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제 진짜 '인간의 눈'을 맞출 시간
기술의 칼날 앞에서 우리의 인권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하지만 절망의 벼랑 끝에 선 이들을 구원해 낸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손을 잡아준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었다.
우리는 이제 디지털 공간에 떠도는 얼굴들이 단순한 픽셀의 집합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고 아들이며, 피와 눈물을 가진 존엄한 인격체임을 다시 한번 자각해야 한다.
딥페이크 조작물을 우연히 접했을 때, 그것을 '가십거리'나 '농담'으로 소비하는 대신 단호하게 거부하고 신고하는 용기. 타인의 고통을 팝콘 삼아 즐기는 디지털 방관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다.
35년의 공직 생활을 갈무리하며 나는 확신한다. 현장의 비릿한 피 냄새를 씻어내는 것이 강제적인 법 집행만은 아니었듯, 딥페이크가 만든 디지털 지옥을 부수는 것 역시 고도화된 안티-AI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 녹화 버튼을 누르기 전, 딥페이크 조작 버튼을 누르기 전, 단 1초만 생각하라. 타인의 영혼을 베는 칼날에 기꺼이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픽셀 너머에 있는 진짜 사람의 존엄을 지켜내는 방패가 될 것인가. 당신이 그 영상을 끄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너져가던 우리의 인권은 비로소 디지털의 차가운 벽을 뚫고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전준석 칼럼니스트는 경찰학 박사이자 35년간의 경찰 생활을 총경으로 마무리한 치안 행정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권성장진흥원 대표로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주요 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성인지감수성, 4대폭력 예방, 자살 예방 및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인권 예방, 리더십 코칭 등 폭넓은 주제로 사회적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범죄심리학’, ‘다시 태어나도 경찰’, ‘그대 사랑처럼, 그대 향기처럼’, ‘4월 어느 멋진 날에’ 등이 있다. 경찰관으로 35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이 인권 침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가 있음을 몸소 깨달았다. 우리 국민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차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인권이 성장할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삼시세끼 인권, 전준석 칼럼]을 연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