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마이티비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열기가 가열되면서 여러가지 일이 발생하고 있다. 후보자든 지지자든 열심히 하다 보니 가끔 선을 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중 유세중인 후보자에게 다가가 친한 척 사진을 찍다가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젊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남친이냐 북침이냐’는 질문을 한 것도 모자라, 그 후보자가 속한 당은 제대로 답을 못한다는 식으로 어떤 당을 싸잡아서 몰고 가려고 한다. 당연히 그 장면은 생방송으로 유튜브를 통해 나갔다. 오마이 티비에서 그 여성의 10분 전 행적을 찾아서 상대편 진영 지지자가 아닐지 추측했다.
그녀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교육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던 서구나, 조선시대 서당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교수법은 간단히 말해 ‘따라하기’있다. 가르치는 사람이 읽는 문장을 학생이 따라 읽고 교사는 설명한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들은 거의 질문을 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이런 교수법은 특히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절에 심했는데 단순 암기로 생각하는 힘을 뺏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주입에서 생각하는 힘은 키우기 어렵다.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학생들은 교사가 외우라는 데로 외우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여지를 갖지 못한다.
시험도 사지선다형이라 불리는 객관식 위주라 핵심 내용만 외우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시험이 많이 칠수록 일방적으로 강요된 생각은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고 잘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일방적 생각을 주입하는 교수법이 철학이나 역사에도 적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해결중심 학습법이 10년도 전에 들어왔는데 여전히 교수법이 과거에 머문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 공교육이나 제대로 교육을 받은 선생님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학생들을 자신의 생각을 세뇌시키려 하는 비정상적인 무리들이 이런 방법을 쓴다고 생각하고 싶다.
독일은 역사 시간에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던져준다. 이런 상황에서 너라면 어떻게 할 지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와 너가 있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생각말하기이다.
논술과 토론 도입 후 세대 중 자기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고, 이기기 위해 토론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토론의 원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고, 이기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 논술이라 토론이 발달하고 활발하게 하는 이유는 나 외에 너라는 존재가 있고 나는 사회 속에 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 가치를 잘 아는 선진국일수록 토론은 더 중요하다. 나의 생각과 너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너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보다 더 괜찮거나 받아들일 것이 있으면 나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남의 생각을 드는 것이 토론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연결망 댓글을 보면 본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댓글을 다는 이들도 있다. 남과 의사소통할 생각 없이 자기 생각만 이야기하고 싶은 류인 것 같다. 글에 관심도 가지지 않으면서 왜 그 글에 댓글을 다는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의외로 그렇게 본 내용과 관련 없는 자기 이야기를 뱉듯이 올리는 이들이 간혹 있다.
그리고 ‘남침이냐 북침이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많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이라면 원래 하나의 나라였던 한국이 왜 남한과 북한의 나누어졌는지부터 질문이 시작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분단 이후 우리는 비극적인 6.25도 겪고 이념에 휩싸여서 같은 민족이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해방 후 한국은 전범국이 아니었다. 전범국인 독일은 미국과 소련이 동서로 분단해서 관리했다. 이런 맥락이라면 전범국인 일본이 분단되는 게 더 맞지 않는지라는 질문이 생긴다. 게다가 미군정은 한국에는 직접 들어와 통치했지만, 일본 정부는 그대로 유지하고 게다가 전범 일왕까지 살려주면서 간접 통치를 했다.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을 전범국 취급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한국의 역사 교육은 아직도 연도와 사건 인물을 외우기 바쁘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전무후무하다. 그러다 보니 시험이 끝나고 대부분 역사에 관련해 잊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배우는 원래 취지에 맞지도 않다. 인문학적으로 역사는 과거의 일을 알아서 미래를 대비하는 데 있다.
인류는 살고 있는 환경과 시대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인간의 본능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라도 주변에 따라서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 예측이 쉽지 않다. 사소한 사건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은 무수히 많아. 이런 인간이 모여서 사는 사회도 사소한 사건들이 모여서 나중에 큰 역사가 되기도 한다. 별 거 아닌 사건이 후대에 보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런 것을 아는 이들이 역사를 가르치려 한다. 역사를 알고 과거의 실수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준비이다. 그러나 암기식 역사 교육을 배운 자 중 지식을 뽐내거나 단답형 지식을 역사의 전체로 알면서 앵무새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안가 본 사람이 서울 간 사람 이긴다’는 말이 있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은 쉽게 ‘예’ ‘아니오’를 답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 어떨 때는 그럴 수도 어떨 때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앵무새들은 이런 경우 조차 자기들이 이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구 학문이 발달하면서 바뀐 것 중 하나가 ‘오류의 가능성 인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백조는 하얗다’라고 서구인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검은 백조를 발견하고 그들은 예외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지금 진리라고 믿고 있더라도, 반박할 증거가 나오면 수정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류가 최소가 되기 위해 학문에 대한 검증을 더 철저히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문학에서도 한나 아렌트나 많은 철학자가 그랬듯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가정을 해서 입증을 철저히 하는 절차를 거친다. 기존 이론으로 실제 사례를 설명할 때 들어맞지 않는다면 새로운 이론을 찾아간다.
한국은 앵무새처럼 남의 이론을 말하는 학자는 많다. 그러나 자기 이론을 만들거나 한국의 사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경우는 서구보다 적은 것 같다. 한국 근현대사 다양한 사건을 봤을 때 충분히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다양한 이론이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학자들이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하는지 늘 의심이 든다.
그래서 저렇게 무례하게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나와 너가 사는 곳이지 나만 사는 곳이 아니다. 저런 건 ‘우문현답’도 아니다.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해 하는 질문이지 몰라서 하는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일 역사교육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 중)
세뇌식 교육
한국 교육을 파괴한 일제
일제강점기 강제노동까지 한 학생들
문제 많은 역사 교과서 집필진들
자격 논란 역사교과 집필진
https://www.minjok.or.kr/archives/77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