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다 왔다고 믿었던 평화가, 마지막 한 발짝 앞에서 멈춰 섰다. 5월 31일, 미국과 이란이 수일간 공들여 다듬은 핵 협상 초안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에서 반려되었다.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에 모인 트럼프는 협상팀이 이란과 어렵게 합의한 문안에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농축우라늄의 처리와 호르무즈 해협의 운명, 바로 이 두 가지 고비를 두고 그는 더 강하고 분명하게 다시 쓰라고 요구했다. 두 달 넘게 세계 경제를 짓눌러 온 전쟁이 끝나는가 싶던 순간, 협상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선다.
전쟁은 어떻게 협상 테이블에 이르렀나
이 협상의 뿌리에는 2026년 2월 28일 시작된 전쟁이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향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면서 불이 붙었고,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으로 맞서며 세계 원유의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틀어막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걸프 국가들이 "수십 년 만에 최악의 에너지 위기"라 부를 만큼 유가가 치솟았고, 그 불길은 미국의 물가와 금리 전망까지 흔들었다.
전면전의 벼랑 끝에서 4월 8일, 파키스탄의 중재로 가까스로 휴전이 성립한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위태로운 멈춤이었다. 미국은 이란 항구를 겨냥한 해상 봉쇄를 유지했고, 양측은 해협을 두고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였다. 그 살얼음판 위에서 협상팀은 한 장의 초안을 빚어냈다. 서명 후 60일간 추가 협상을 진행하며 그동안 호르무즈를 다시 열고, 이란의 핵 의무와 미국의 단계적 제재 해제를 함께 논의한다는 구상이다.
트럼프는 무엇을, 왜 막아섰나
미국 관리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합의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머지않아 타결되리라 믿는다. 다만 그는 자신에게 사활이 걸린 조항만큼은 더 단단하고 또렷하게 못 박기를 원한다. 그래서 초안은 다시 이란 측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장 마음에 걸려 하는 대목은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우라늄의 행방이다. 현재 초안에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그러나 워싱턴은 말뿐인 다짐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 우라늄을 어떻게, 누구에게, 어떤 시간표로 넘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보증을 요구한다. 트럼프는 이미 며칠 전, 그 우라늄을 러시아나 중국에 넘기는 방안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두 번째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그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해협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누구도 그곳을 통제하지 못한다"라고. 워싱턴은 이란이 원칙적으로는 합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마지막 장애물은 트럼프가 요구한 수정뿐이라고 본다.
테헤란에서 터져 나온 반발의 목소리
협상의 무게추는 곧장 테헤란으로 옮겨 간다. 이란 혁명수비대 전 총사령관이자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자문역인 모흐센 레자이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지위를 바꾸는 법안이 곧 이란 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것이라 밝혔다. 그 법안이 통과되면 호르무즈는 더 이상 국제 수로가 아니라 이란과 오만의 국경 안으로 편입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법안이 해협에서 러시아와 중국에 특혜를 부여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레자이의 칼끝은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눴다. 해상 봉쇄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과도한 요구로 트럼프가 또다시 외교를 배신했다는 것이다. 이란 국영 파르스 통신 역시 트럼프가 합의문의 조항과 어긋나는 주장을 내놓았다며 날을 세웠다. 그사이 파키스탄과 카타르의 중재자들은 미국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와 긴밀히 접촉하며 협상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전쟁 이후 처음으로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이 해협을 통과한 장면은, 깨지기 쉬운 신뢰의 첫 새싹과도 같았다.
강대국의 셈법은 늘 냉정하다. 더 강한 조항, 더 확실한 보증, 한 치도 양보 없는 줄다리기. 그러나 그 차가운 문장들 너머에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있다. 평화란 결국 종이 위의 합의가 아니라, 그 합의가 지켜 내려는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가 아니던가. 서명 직전에 멈춘 그 펜이 끝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세계는 숨죽여 지켜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