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보의 일히일비(14) - 내가 너무 늦었지? 미안해.

양갈래 머리 소녀… 45년 전 유치원 첫사랑과의 기적 같은 재회

입시·유학과 이혼… 모진 풍파와 엇갈림 속에서 놓지 못했던 간절한 인연

40대 중반에 이룬 결실, 잠든 아내 향한 고백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주변이나 매체에서 초등학교 첫사랑 이야기는 가끔 들어봤어도 유치원 첫사랑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나는 아내를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다. 내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마치 서양 여자아이처럼 생긴 데다가 머리도 노랗던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유난히 작고 예쁜 어린이였다. 45년 전 내 기억 속 아내의 모습은 항상 양갈래 머리를 땋은, 짱구 이마가 유난히 귀엽고 예쁜 아이다. 그 이마를 딸아이가 쏙 빼닮았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됐다. 잠깐 동안 좋은 마음으로 사귀게 되었지만, 아내의 입시와 더불어 여러 요소들의 방해로 인해 나는 버티지 못하고 그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요소들 중에는 장인어른도 한몫하셨다. 물론 지금은 나도 딸이 있으니 충분히 이해는 간다. 교회에서 양아치로 소문난 녀석이 내 딸을 좋아한다고? 살려둔 게 다행이다.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었을 때에도 난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아내는 유학을 갔고, 유학을 다녀와서는 결혼을 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모두 놓쳐버렸다.

 

결국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정말 긴 시간을 돌고 돌아서 왔다. 유치원 때부터라고 한다면, 40년을 돌아 왔다. 중ㆍ고등학생 시절부터라고 한다면, 30년을 돌아서 왔다. 20대라고 쳐도 20년 이상을 돌고 돌아 왔다. 아내가 이혼을 하고 난 뒤, -마치 45년 전 내가 서성거렸던 것처럼- 내 근처를 서성거렸다던 그때부터라고 쳐도 10년 이상을 돌고 돌아 왔다.

 

45년의 인연이다. 아내와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겠는가. 얼마나 간절하면서도 원망스러운 시간들이었겠는가. 아내는 그 시간들을 버텨내기 위해 얼마나 혼신의 힘을 짜내며 살아왔겠는가. 주변의 왜곡과 오해 속에서 얼마나 외로운 시간들을 눈물로 보내왔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종종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빠, 총각으로 기다려 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난 그 말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잠들어 있는 아내의 이마와 얼굴을 만지며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너무 늦었지?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허동보 목사(Rev. Huh Dongbo) | 수현교회(Suhyun Church)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AI시대, 히브리어로 답하다』 외

 

 

 

작성 2026.05.31 20:20 수정 2026.05.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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