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권 정비구역에서 문화유산 보존과 주변 경관 보호 원칙은 유지하되, 사업 추진 과정의 중복 절차와 일률적 규제를 줄이는 법 개정이 추진된다. 국가유산청은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지난 5월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5월 11일 밝혔다.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의 규제 방식이 ‘무조건 제한’에서 ‘보존 기준에 따른 합리적 관리’로 바뀐다. 이번 개정안은 역사문화권 정비구역 안에서 건축행위 등에 대한 일률적 규제를 개선하고, 국가유산 관련 절차를 일괄 심의·허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시계획 승인 절차도 국가유산청장 중심으로 일원화해 사업 시행자의 행정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역사문화권은 고대 역사와 관련해 하나의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면서 유형·무형 역사문화자원을 보유한 권역을 말한다. 현재 특별법상 역사문화권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중원, 예맥, 후백제 등 9개 권역으로 설명된다. 이들 권역은 단순한 개발 대상지가 아니라 고대사, 지역 정체성, 유·무형 유산, 자연·생활 경관이 함께 얽힌 역사 공간이다.

그동안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문화유산, 매장유산, 토지이용계획 등의 구체적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구역 전체가 각종 행위 제한구역으로 설정되는 문제가 있었다. 건축물의 신축·개축·증축, 토지 개간, 토석류 채취 등의 행위가 일률적으로 제한되면서, 실제 보존 필요성이 높은 구역과 상대적으로 영향이 낮은 구역을 세밀하게 나누기 어려웠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시행계획 단계에서 행위 제한구역과 허용 기준을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역 여건에 맞는 정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보존이 필요한 곳은 기준을 강화하고, 불필요하게 묶여 있던 지역은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핵심은 규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규제를 정확한 곳에 적용하는 데 있다. 역사문화권은 한 번 훼손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고고·역사 자원을 품고 있다. 따라서 매장유산, 문화유산 주변 경관, 토지 이용 계획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보존 목적과 직접 관련이 낮은 지역까지 동일하게 묶어 사업을 지연시키는 방식은 지역의 지속 가능한 활용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중 허가 문제도 개선된다. 그동안 사업시행자는 시·도지사의 실시계획 승인을 받은 뒤에도, 정비구역 내 국가유산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면 국가유산청장에게 별도 허가를 다시 받아야 했다. 이번 개정안은 실시계획 승인 주체를 국가유산청장으로 변경하고, 관계 행정기관과 사전 협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별도 허가를 받은 것으로 의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는 사업 속도를 높이기 위한 행정 간소화이지만, 보존 절차를 생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국가유산 보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승인 단계에서 함께 검토하도록 해, 절차는 줄이고 심의의 책임성은 높이는 방식이다. 행정기관별로 흩어져 있던 허가 절차를 사전에 조정하면 사업시행자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고, 국가는 보존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다.
이번 개정은 역사문화권 정책이 보존과 활용의 균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정비구역 지정 자체가 규제 강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문화권의 지속 가능한 관리는 문화유산을 보호하면서도 지역 주민의 생활, 기반시설 정비, 관광·교육 콘텐츠 개발을 함께 고려해야 가능하다.
특히 자연경관과 역사 경관을 함께 지키는 방식이 중요하다.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은 단순히 유적 주변을 정비하는 사업이 아니라, 유산이 놓인 지형과 마을, 길, 조망, 생활 환경까지 함께 다루는 정책이다. 건축행위와 토지 이용을 모두 금지하는 방식만으로는 보존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 어느 곳을 엄격히 보호하고, 어느 곳을 제한적으로 활용할지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 정교한 보존 정책이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정비구역 특성을 반영한 행위 제한구역과 허용 기준 설정, 실시계획 승인 절차 일원화, 허가 의제 처리가 가능해져 행정 비효율이 해소되고 사업 추진 속도가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중앙행정기관 간 협력체계가 강화돼 안정적인 역사문화권 정비사업 추진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개정안의 의미는 불합리한 규제를 걷어내는 데만 있지 않다. 문화유산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행위를 일률적으로 막는 방식에서 벗어나, 유산의 가치와 지역의 현실을 함께 보는 제도 개선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역사문화권 정비는 개발을 쉽게 하자는 정책이 아니라, 보존 기준을 분명히 세운 상태에서 불필요한 행정 장벽을 줄이는 정책이어야 한다.
역사문화권은 과거의 유산이 현재의 지역과 만나는 공간이다. 문화재를 보호하고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는 원칙은 흔들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원칙이 과도한 중복 절차와 비효율로 작동한다면 보존 정책의 신뢰도 함께 낮아질 수 있다. 이번 특별법 개정은 보존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행정 절차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향후 국가유산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