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숲이 된 남자

클린트 벤틀리의 <기차의 꿈>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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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여름 캠핑장에서 읽었던 한 권의 책은 완전히 나를 사로잡았다. 진솔하고 무뚝뚝하지만 유려하고 절제된 문장은 한 인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결국 혼자 남게 되는 한 인간을 이보다 더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싶었다. 숲속 캠핑장의 공기와 소설 속 풍경은 묘하게 겹쳐서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가 소설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라 천천히 아껴서 읽어야 했다. 캠핑장 휴게실에서 마지막 장을 덮던 순간, 내 인생 책을 만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데니스 존슨의 <기차의 꿈>은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왔다. 

 2002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섰다. 활자 속 문장의 결을 영상이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조엘 에저튼은 고독과 상실을 견디는 로버트 그래이니어를 제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낯선 이름의 감독 클린트 벤틀리는 이 고요한 걸작을 어떤 방식으로 옮겨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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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결국 숲에 홀로 남겨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설정만 놓고 보면 어딘가 폴 오스터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 미국 북서부. 개척과 개발이 한창이던 시대에 고아로 자란 그레이니어는 철도 건설과 벌목 노동으로 살아간다. 그는 교회에서 만난 글래디스와 결혼하고 숲속 오두막에서 딸 케이티와 함께 살아간다. 벌목 일이 생길 때마다 집을 떠났다가 돈을 모아 돌아오는 삶이 반복되지만, 두 사람은 언젠가 작은 제재소를 차리는 미래를 꿈꾼다. 그래이니어는 그 마지막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숲으로 떠난다. 그러나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를 보게 된다. 대화재는 숲 전체를 집어삼킨다. 오두막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글래디스와 케이티 역시 사라진다. 마을을 헤매던 그래이니어는 결국 불타버린 터에 머물며 그들을 기다리기로 한다. 혼자 세상에 던져졌던 그는 다시 혼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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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맡은 아돌포 벨로소는 해 질 녘의 빛을 집요하게 붙든다. 저녁놀은 대자연의 풍광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쉬운 시간대가 아니다. 왜냐하면 분 단위로 노출값이 달라지고 인물의 피부 톤도 변하기 때문에 편집에서 컷이 잘 붙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에서 느끼는 해 질 녘 시간은 무척이나 짧아 테이크가 많아질 경우 촬영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다. 이 시간대를 가장 잘 다룬 영화는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이다. 아카데미 촬영상에 빛나는 <천국의 나날들> 역시 비슷한 시대의 농장 노동자를 다룬 걸작이다. <천국의 나날들>에서 대농장의 풍광은 절정부의 화재 사건에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붉게 물들인 농장은 한밤중 일어나는 화재로 발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풍경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천국의 나나들>이 <황무지>에서 이어지는 젊은이들의 이탈과 대하드라마적 서사를 다루고 있다면 <기차의 꿈>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서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그레이니어에게 자연은 고단한 노동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다. 혼자 남게 된 그를 유일하게 도와주는 읍내의 상점 주인이자 원주민인 잭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그는 자연을 떠나지 못하고 자연화되는 길을 택한다. 그건 잃어버린 가족을 기다리기 위한 의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방식의 삶을 배우지 못했고 오로지 그곳에서 견디는 법만은 익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기차의 꿈>인 만큼 꿈의 비중이 큰 영화이지만 그레이니어의 꿈을 이용한 잦은 플래시백은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게 만들고 그가 과거에 집착하고 붙들려 있다는 점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화자의 나레이션은 주인공의 내면을 너무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관객의 관점에서 해석의 다양성을 해치는 부분으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그레이니어를 재현한 조엘 에저튼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슬픔을 삼킨 눈빛과 순박한 표정, 절제된 몸짓은 거의 대사가 없는 순간에도 인물의 시간을 견디게 만든다. 특히 상실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태도는 설명보다 얼굴의 질감만으로 전달된다. 여기에 브라이스 데스너의 현악 4중주 선율이 더해지며 영화는 명상적이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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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 문명이 급속히 변모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던 목조 다리는 철제 교량으로 대체되고, 도끼와 톱은 전기톱에 자리를 내어준다. 마차는 자동차와 트럭으로 바뀌고,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하지만 산림관리인 클레어가 들려주는 숲의 시간은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장대하다. 거대한 빙하 아래 잠들어 있던 땅, 빙하가 녹으며 생겨난 계곡과 호수, 그리고 반복되는 화재와 홍수. 인간에게는 재앙인 순간조차 자연에는 오랜 순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폐허가 되었던 숲은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푸르게 살아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래이니어에게 대화재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부채로 남는다. 그날 자신이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가족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죄책감 때문이다. 숲에서 들려오는 글래디스의 환영 같은 목소리는 그의 내면에 남은 후회를 끊임없이 흔든다. 하지만 그 또한 지나간다. 그가 '케이티'라고 생각했던 소녀의 다리를 고쳐준 것처럼 그에게 남겨진 마음의 짐 역시 서서히 그의 어깨에서 내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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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니어가 클레어의 망루에서 처음으로 숲을 내려다본 것처럼, 스포캔으로의 마지막 여행에서 4달러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본다. 하늘 위에서 대지를 바라보는 순간, 자신이 살아온 시간이 한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가 평생 붙들고 살아온 삶은 거대한 풍경 속 아주 작은 점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밤 기차의 불빛이 오두막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와도 닮았다.

고아로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그들을 기다리며 평생을 살아온 이 남자는 점차 숲을 닮아가다 숲 자체가 되어 스며들게 된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고, 묵묵히 일하며, 한 때 행복을 자양분 삼아 끝없이 달려 나가 바다를 향하게 되는 기차의 꿈을 꾸었던 그는 공중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는다. 아마도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도 자신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었을 거라 짐작하며 나무에 박힌 가죽 장화 한 켤레가 되어 숲의 일부로 남는다. 




K People Focus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희망의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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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5.26 14:36 수정 2026.05.2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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