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한식 디렉터 장윤정 ] K-푸드 열풍의 그림자, 외국인을 위한 레시피가 부족하다

AI가 추천하는 요리, 그러나 외국인은 여전히 헤맨다

K-푸드 세계화의 성공 뒤에 남겨진 언어의 장벽

단순 번역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화형 레시피’의 문제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며 라면을 끓이고, 유튜브 쇼츠를 따라 김밥을 만드는 시대다. 한식은 더 이상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다. 세계 곳곳의 젊은 세대는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을 올리고, 김치볶음밥을 ‘소울푸드’라고 부른다. 실제로 K-푸드는 이제 음악과 드라마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가 됐다. 그런데 이상한 장면이 있다.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들이 정작 “레시피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다.

 

AI는 이미 냉장고 속 재료를 분석해 요리를 추천하고, 남은 식재료로 가능한 메뉴까지 계산해 준다. 스마트 주방은 사람보다 빠르게 조리 시간을 계산하고, 음식의 영양 밸런스까지 분석한다. 하지만 그 놀라운 기술 속에서도 외국인 사용자들은 여전히 한국 요리 앞에서 멈춰 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레시피가 여전히 ‘한국인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적당히 볶는다”, “한 숟갈 넣는다”, “센 불에서 익힌다”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이런 표현은 매우 추상적이다. 간장 한 숟갈이 몇 ml인지, 센 불이 몇 도인지, 대파 한 단이 어느 정도 양인지 알기 어렵다. 결국 K-푸드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외국인을 위한 체계적인 레시피 환경은 아직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AI가 학습하는 데이터 자체도 대부분 한국어 중심이라는 점이다. AI는 결국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답을 만든다. 외국인을 위한 설명 방식이나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데이터가 부족하면 AI 역시 한국식 표현을 반복하게 된다. 기술은 최첨단인데 설명 방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이유다.

 

한식 세계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 과제로 추진돼 왔다. 김치, 비빔밥, 불고기 같은 메뉴는 세계인의 입맛 속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한국 농식품 수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해외 한식당 수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음식의 세계화는 단순히 “먹어보는 경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직접 만들고, 이해하고, 자신의 문화 속으로 흡수될 때 비로소 진짜 세계화가 이뤄진다.

 

문제는 현재 상당수의 한식 레시피가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을 전제로 작성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간장”, “멸치육수”, “고추장” 같은 재료는 한국인에게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대체재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레시피는 이런 문화적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 특히 해외에서는 같은 재료라도 염도와 맛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만든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했는데 맛이 달라지는 이유다.

 

또한 조리 과정 속 문화적 맥락도 큰 차이를 만든다. 한국인은 반찬 문화에 익숙하지만 서구권은 메인 디시 중심 문화가 강하다. 한 상 차림 개념 자체가 낯설다. 결국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식 레시피가 단순한 요리 설명서가 아니라 낯선 문화 해설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AI 기술은 오히려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AI는 사용자 국적, 언어, 식문화, 알레르기 정보, 종교적 식습관까지 분석해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사용자에게는 자동으로 대체 식재료를 추천하고, 매운 음식을 어려워하는 국가 사용자에게는 고추장 농도를 조절한 레시피를 제안할 수 있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문화 번역이 가능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미 글로벌 플랫폼들은 AI 기반 맞춤형 요리 서비스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사용자의 냉장고 재료를 사진으로 분석하거나, 지역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중심으로 레시피를 재구성하는 기능도 등장했다. 그러나 한식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은 단순 자동 번역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번역”보다 “이해 가능한 설명”이다. 외국인은 단지 김치찌개 만드는 법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 김치가 발효되는지, 왜 한국인은 찌개를 함께 먹는지, 왜 밥과 국을 같이 먹는 문화가 생겼는지까지 궁금해한다. 결국 한식 레시피는 음식 설명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레시피가 단순 조리법을 넘어 국가 경쟁력이 될 가능성도 크다. 음식 데이터는 문화 데이터이자 소비 데이터이며 관광 데이터다. 어떤 나라 음식이 AI 플랫폼 안에서 더 쉽게 소비되고 더 친절하게 설명되는가는 결국 글로벌 시장 영향력으로 이어진다. K-팝과 K-드라마가 세계인의 감정을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K-레시피가 세계인의 식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오는 셈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식 표현만 반복하는 레시피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외국인들은 “맛있어 보이지만 따라 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결국 간편식 소비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진짜 세계화는 소비에서 끝나지 않는다. 직접 만들고 재해석하며 자기 문화로 흡수할 때 완성된다.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번역 레시피가 아니다. 외국인의 문화와 생활환경을 고려한 AI 기반 글로벌 레시피 플랫폼이다. 재료 단위부터 조리 도구, 식문화 설명까지 현지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AI는 사용자의 조리 실패 원인까지 분석하며 개인별 요리 코치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식 세계화의 다음 단계는 음식 수출이 아니라 경험의 수출이다. 외국인이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고, 이해하고, 자기 식탁 속 문화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AI 기반 레시피 혁신이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AI가 요리를 도와주는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의 음식이 AI 안에서 더 친절하게 설명되고, 더 쉽게 이해되며, 더 자연스럽게 현지 문화 속으로 스며드는가를 경쟁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K-푸드 열풍은 이미 시작됐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먹어본 경험”에서 끝낼 것인가, 아니면 “직접 만드는 문화”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 갈림길에 AI 레시피가 서 있다.

 

결국 미래의 한식 세계화는 주방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주방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AI도 함께 서 있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번역이 아니다. 더 깊은 이해다. 한식 콘텐츠 제작자, 스타트업, AI 개발자들은 이제 외국인의 시선에서 레시피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음식은 기술보다 오래 남는 문화다. AI 시대일수록 사람의 식탁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장윤정 칼럼니스트 기자 kt7479@naver.com
작성 2026.05.24 20:53 수정 2026.05.24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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