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잔재물: 화정동 동굴 - 약산소식지
광주의 오래된 신도시라 할 수 있는 상무지구가 있다. 1995년 개발을 시작해서 2003년에 완공한 지구이기에 현재는 신도시라 말하기에는 조금 오래된 느낌은 있다.
‘상무’라는 말은 ‘상무대’에서 왔다. ‘상무’(尙武)는 대한민국 육군의 군사 교육 및 훈련 시설 이름에서 왔다.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에서 상무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 작전과 지휘부대 명칭에서 나온 이름에 쓰이기도 했다.
상무대 이전 일제강점기에 군 비행장과 관련 부대가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용산처럼 일제강점기 일제의 군 용지로 쓰이다가 미군 부대가 된 것처럼, 일제강점기 일제의 군 용지였다가 해방 후 군부독재 시절 군부대가 있던 장소이다.
개발을 시작하며 상무대는 장성으로 옮겼고 현재는 신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용산이나 부산 같은 다른 지역과 달리 일제강점기 잔재를 보존하고 있다. 모든 일제강점기 잔재가 보존된 것은 아니다. 쌍촌동 동굴의 경우 가장 규모가 컸지만,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졌다.
광주 학생 독립 운동 기념관을 갔다가 근무하는 문화관광해설사 덕분에 이 동굴을 알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옛 비행장 터에 세워졌다고 한다. 원래 시내에 있다가 오래되었기도 했고 좀 더 나은 장소가 필요해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일제가 남기고 간 비행장은 도서관 학생 독립 운동기념관 공원 등 주민을 위한 시설로 돌아왔다. 그리고 동굴은 그대로 살려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책에서 읽는 역사와 현장에서 보는 역사는 다르다. 책이 자세히 설명해서 알 듯해도, 실제로 현장에서 눈과 귀 모든 감각을 동원해 느끼는 강렬함은 오래 간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책에서 설명했던 것과 겹치면서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과거 역사 현장은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이 현대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아예 그 자체가 과거의 모습을 잃은 경우도 많다.
가덕도 동굴이나 제주도 동굴처럼 위에서 보면 산과 같은 자연 지형물로 보일 수 있게 위장했다. 산 중간 부분을 길게 파서 군사 시설물로 사용했다. 광주 동굴의 경우 비행기용 기름 저장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해방 후에도 한동안 기름이 있었다고 해설사분이 이야기해 주셨다.
상무대가 주둔하던 당시 상무지구는 물 좋은 농촌이었다고 한다. 해남 고구마만큼 고구마로 유명한 동네도 있었다고 한다. 또 점쟁이 동네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점쟁이도 있었다고 한다.
상무대는 존재했지만, 주변은 조용한 농촌이었다. 상무 지구가 개발되면서 주변 농촌이 같이 개발 대상이 되었다. 고구마밭도 사라지고 물 좋은 과거 모습도 찾기 힘들게 되었다.
문화관광해설사분은 이곳에서 자라 학교도 다녔다고 한다. 일하는 동안 외지에 가 있기도 했지만, 퇴임 후 다시 돌아와 봉사 활동 중이다. 어릴 때부터 살아 온 동네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처음 문화관광해설사분과 말을 하게 된 것이 전시 중 ‘일제시대’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독립운동 관련 전시에서 ‘일제강점기’를 ‘일제시대’라 표현하면 불편하다. ‘일제’라는 말은 일본 제국의 줄임말로, 일본의 관점을 나타내는 말이다. 한국은 원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 일본이 강제로 점령해서 수탈했다는 의미로는 일제강점기가 더 바르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강점기’라 칭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문화관광해설사분도 처음에 해방 후 역사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알지만, 용어를 바꿀 생각이 처음에 없으셨다. 너무 오래 고착된 단어라 이상한 점을 못 느끼신 듯했다. 설명을 해 드리니 조금 후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어르신이라 불러드리고 싶다.
한국 노인들은 본인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면 상당히 싫어한다. 대부분 맞는다고 우기거나 어리다는 것을 트집 잡아 뭐라 하신다. 그러나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문화관광해설사 어르신은 스스로 생각해 보시더니 생각을 바꾸어 주셨다.
오늘 만난 어르신은 스스로 공부해서 일본어도 독학하고, 독학한 일본어로 일본 잡지를 보며 농업에 대해 독학한 분이다. 또 그 배운 것은 남에게 베풀어 도움을 주며 살아왔다. 그런 삶의 자세가 나이가 들어도 남아 있으니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어르신을 만나면 나는 저 나이에 어떤 모습일지 생각하게 된다.
5.18 당시 상무대가 한 일
상무대에서 이루어진 성폭행
일제강점기 광주 항공 기지
해군 강제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