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전쟁, 한국은 지금 어디 서 있나
반도체 하나가 외교 테이블을 뒤흔드는 시대다. 한국 정부는 2026년 4월 27일 제1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NEXT 국가전략기술' 체계 고도화 방안을 심의·의결했다. 외교·안보 전략적 중요성, 국민경제·연관 산업 영향, 신기술·신산업 창출이라는 세 가지 선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AI 전환 선도·통상·안보 주도권·미래 혁신 기반이라는 3대 핵심 임무를 설정한 것이 이번 개편의 골자다.
이 방안은 기존 국가전략기술 체계를 전면 재설계한 것으로, 단순한 기술 목록 갱신이 아니라 기술을 경제·안보·외교의 통합 자산으로 운용하겠다는 국가 의지의 재확인이다. 미국이 미 상무부 수출관리규정(EAR)을 통해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수출을 전면 통제하고, 유럽연합이 핵심원자재법(CRMA·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2024년 발효시켜 전략 광물 공급망 확보에 나서는 동안, 기술은 더 이상 산업의 언어만이 아닌 안보의 언어로 자리를 굳혔다.
이 흐름 속에서 이번 한국 정부의 결정을 단순히 정부 정책 문서 한 건으로 독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과학기술 정책이 외교안보 정책과 완전히 융합하는 구조적 전환점이다.
'NEXT 국가전략기술'이라는 명칭 자체가 상징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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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체계가 '무엇을 개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고도화는 '왜, 누구와, 어떤 위협에 대응해 개발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질문에 답하려 한다. 이 차이는 작은 뉘앙스가 아니라, 국가 자원 배분의 철학 자체를 바꾸는 문제다. 이번 체계 고도화의 근거는 세 가지 선정 기준 위에 놓인다.
외교·안보 전략적 중요성, 국민경제·연관 산업에 대한 영향, 그리고 신기술·신산업 창출 가능성이다. 이 세 기준은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핵융합(Nuclear Fusion) 기술을 예로 들면, 그것은 미래 에너지 안보(첫 번째 기준)이자 탄소중립 산업 생태계의 기반(두 번째 기준)이며, 플라즈마 제어 등 연관 신산업의 씨앗(세 번째 기준)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의 기술이 세 기준을 동시에 충족할 때 비로소 '국가전략기술'의 지위를 얻는다는 구조는, 선택과 집중의 논리를 보다 엄밀하게 만든다. 기존 체계가 부처별 이해관계에 따라 목록이 팽창하던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신설·확대된 기술 분야를 들여다보면 이번 개편의 방향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혁신·미래 소재 분야가 새로 생겼다. 미래 에너지 기술 영역에서는 핵융합과 재생에너지, 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이 대폭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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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인공지능(AI) 인프라 고도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드론, 친환경·자율운항 선박이 국방·안보 및 산업 경쟁력 강화 기술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목록은 단순한 미래 기술의 열거가 아니다. BCI는 뇌 신호를 디지털 명령으로 전환하는 기술로, 군사 작전 지휘 체계의 혁신 가능성이 거론된다.
자율운항 선박은 물류 안보와 해군력의 미래를 동시에 좌우하는 플랫폼으로 평가받는다. 드론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현대 전장의 핵심 수단임이 확인되었다.
이들 기술이 안보 범주로 공식 편입된 것은, 한국 정부가 기술과 안보의 경계를 허무는 글로벌 추세를 제도적으로 수용했음을 의미한다. 이번 고도화 방안이 나온 직접적인 배경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26년 3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의결된 '범부처 기술관리체계 정비 및 협업 강화 방향'이 선행되었다. 4월 27일 의결된 방안은 그 후속 조치다. 즉 이번 결정은 즉흥적인 정책 발표가 아니라, 범부처 협의와 전문가 심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설계된 결과물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주관을 맡아 체계를 수립했으며, 정부는 앞으로 국가 기술 관리 체계 간 '공통 기술 분야'를 토대로 단절 없는 육성 체계를 구축하고, 범부처 및 민간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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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참여를 공동 대응 체계의 한 축으로 명시한 점은, 정부 주도 연구개발(R&D) 패러다임에서 민관 협력 생태계로의 전환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AI·핵융합·BCI…무엇이 달라지는가
물론 이 방안에 회의적인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판론자들은 한국 정부가 과거에도 비슷한 형태의 전략기술 목록을 반복적으로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예산 배분과 집행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아 선언으로 끝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술 목록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실행 거버넌스(Governance)가 약하면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방안이 이전과 다른 구조적 조건 위에 서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세 가지 선정 기준을 명문화하고, 범부처 협업 체계를 전제로 공통 기술 분야를 공유하는 구조는, 부처 이기주의에 의한 목록 왜곡을 제도적으로 제어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실행력 여부는 앞으로의 예산 편성과 관계부처 조율 과정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출발점의 설계는 이전보다 정교해졌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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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NEXT 국가전략기술' 체계 고도화의 성패는 선정 기준의 정밀함이 아니라, 그 기준이 실제 자원 배분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AI 전환 선도, 통상·안보 주도권, 미래 혁신 기반이라는 3대 핵심 임무는 그 자체로 타당하다. 한국이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의 최전선에 서 있고, 우주·방산 기술의 수출 경쟁력을 키워야 하며, 인구 감소와 저성장의 구조적 한계를 기술 혁신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진단도 정확하다.
문제는 언제나 실행이다. 이번 고도화 방안이 3년 뒤 '또 다른 선언문'으로 기억될지, 아니면 한국 기술주권의 실질적 전환점으로 기록될지는, 지금부터 범부처와 민간이 이 체계를 살아있는 제도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달려 있다. 한국 사회가 기술 정책을 소수 전문가의 영역으로 방치하지 않고,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갖고 감시하며 요구하는 문화를 형성할 때, 비로소 이 체계는 선언을 넘어설 수 있다.
그 시험대는 2026년 하반기 예산안 편성과 후속 시행 방안 공개에서 가장 먼저 확인될 것이다. Q. NEXT 국가전략기술 체계 고도화 방안은 기존 국가전략기술과 무엇이 다른가.
A. 기존 체계가 개발 대상 기술 목록을 나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고도화 방안은 외교·안보 전략적 중요성, 국민경제·연관 산업 영향, 신기술·신산업 창출이라는 세 가지 선정 기준을 명문화해 기술 선정의 근거를 체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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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범부처 공통 기술 분야를 공유하는 협업 구조를 전제로 설계되어, 부처별 개별 운용에서 통합 관리 체계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선언 너머, 실질 경쟁력을 묻는다
Q.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된 이유는 무엇인가. A.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인간의 뇌 신호를 컴퓨터와 직접 연결하는 기술로, 군사 지휘 체계 혁신, 첨단 의료, 장애인 보조 기기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 가능하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 주요국 연구기관이 국가 차원의 BCI 연구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이 기술을 안보 및 산업 경쟁력 강화 기술군에 공식 편입시켰다. Q.
이번 방안에서 민간 기업의 역할은 어떻게 설정되어 있나. A. 정부는 범부처 공동 대응 체계와 함께 민간 공동 대응 체계 마련을 명시했다.
이는 정부 주도 연구개발(R&D)에서 벗어나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이 전략기술 육성의 실질적 파트너로 참여하는 구조를 지향한다. 구체적인 민관 협력 프로그램과 예산 배분 계획은 후속 시행 방안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